통합진보당이 '내란 음모' 사건에 휘말리며 지난해 2월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 지난해 9월 '분당(分黨) 사태'를 겪은 지 11개월 만에 당의 존망이 흔들리는 지경이 됐다.
진보당은 이날 국가정보원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대해 '용공조작' '유신부활'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정희 대표는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원의 범죄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고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라는 촛불 저항이 거세지자 이를 잠재우려는 공안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홍성규 대변인은 "오늘 새벽 6시30분 대한민국의 시계는 정확히 41년 전으로 돌아갔다" 면서 "박근혜정권이 2013년판 유신독재체제를 선포했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진보당이 격한 언사를 써가며 반발하는 배경에는 이번 사안이 당의 운명이 걸릴 만큼 위중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지난 분당 사태는 당내 구당권파(민주노동당 세력)과 신당권파(국민참여당 및 진보신당 탈당파 세력)간 패권 다툼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반면 이번에는 국가기관을 전복시키려는 내란 음모 혐의를 받고 있어 사안의 경중 자체가 다르다.
특히 이 의원을 비롯한 당의 주축세력인 경기동부연합 인사 다수는 '종북(從北) 세력'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1980년대 민족해방(NL) 운동권의 최대 지하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 받은 이력을 가진 이들은 90년대 북한의 실상이 공개된 이후에도 3대 세습, 북한 핵 문제 등에 입을 닫고 있어 보수층의 '사상 검증' 요구에 시달려 왔다. 더구나 이 의원은 지난해 6월 기자들과 만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이정희 대표는 지난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우리 정부를 '남쪽 정부'라고 표현해 논란을 빚어왔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종북 논란이 의원들의 사상검증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수사를 통해 내란음모 사실이 입증된다면 통합진보당의 존재 이유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정당 해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정국에도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되는 이번 파문에 대해 여당은 '면밀 수사'를 주문했고 야당은 '엄중한 사태'라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이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진정으로 떳떳하다면 압수수색을 방해하지 말고 검찰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며 "국민에게 주는 충격과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철저하고 면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국정원이 국회까지 들어와 현역의원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하는 사태를 엄중히 지켜본다"고만 밝혔다. 국정원의 전격적인 수사배경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종북 논란의 폭발성을 감안해 신중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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