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무상 복지 정책이 확대되고 있지만 늘어나는 예산을 '누가 얼마나 부담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예산의 일부분을 내놓으면 지자체가 대응투자를 하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지만 예산분담율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해 통보할 뿐 협의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가적인 복지정책을 수립할 때 예산분담에 대한 원칙을 마련하고, 지자체와 국고보조율을 실질적으로 협의ㆍ조정할 수 있는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홍환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책임연구원은 "이번 무상보육 논란은 국고보조사업을 신규편성하거나 조정할 때 지자체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며 "국회 및 중앙정부가 국고보조사업을 편성할 때 지자체의 의견을 의무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보조금 관리법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이 지자체의 예산 부담이 필요한 보조금 사업을 할 때는 안전행정부장관과 협의하고, 안행부 장관은 의견서를 기획재정부 장관과 해당 중앙행정기관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안행부 장관이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해 전달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김상한 서울시 예산담당관은 무상보육 논란에 대해 "지자체 입장에서 '돈이 없어서 어렵습니다'는 의견도 전해보지 못했다"며 "만약 사전 조율이 있었다면 '지방 재원에 비해 정책 결정 속도가 너무 빠르다', '국고보조율을 현실성 있는 수준으로 높여달라'는 식의 의사표명이라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 관계자도 "안행부의 역할은 단순히 우리의 '의견'을 듣는 수준"이라며 "전국 자치단체의 입장을 대변하기 보다는 정부의 편을 들지 않겠냐"고 말했다. 문제가 된 무상보육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50대50으로 부담하고 있지만 서울은 재정여건이 좋다는 이유로 정부의 보조율이 20%에 불과하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 따르면 2007년 32조원(지방예산 대비 약 28%)이던 국고보조사업 규모는 2012년 53조(지방예산 대비 약 35%)로 늘었지만 정작 국비보조율의 2007년 약 70%에서 2012년 약 60%로 줄어들어 지자체의 부담만 높아졌다.
이런 식으로 지방 재정이 악화되자 무상보육 국고보조율을 현행 50%에서 70%(서울은 20%에서 40%)로 높이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보건복지위를 통과했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법사위에서 9개월째 계류중이다.
한 중앙부처의 재정운용담당관은 "정부 보조금 사업은 수백 가지나 되고 상위법령(보조금 법)에서 보조금 사업별로 기준보조율을 정해놓고 기재부에서 시행령을 통해 조정하지만 사업 하나하나마다 지방의 의견을 물을 수는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재원 부경대(행정학) 교수는 "국가 재정 건전성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기재부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 난색을 표하는 이유는 이해한다"면서도 "지방자치가 바로 서려면 지방의 목소리에 반드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보조율을 명문화 시키는 게 부담스럽다면 별도 시행령을 통해서라도 지방의 국고분담율을 조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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