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불교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이 제 34대 총무원장 선거를 40여일 앞두고 내홍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백양사 승려 도박 파문과 총무원장의 룸살롱 출입 등 이른바 '승풍 실추 사건'을 겪으면서 자승(59) 총무원장이 "마음을 비웠다"며 여러 차례 연임 포기 의사를 내비쳤지만 불출마 선언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서 반(反)자승 연대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종단 내 예산 집행과 인사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 '불교 대통령'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총무원장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 싸움은 대통령 선거만큼 치열했고, 종단 내 갈등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10월 10일 치러질 총무원장 선거는 간선제로 치러진다. 선거인단은 중앙종회 의원(국회의원 격) 81명과 24개 교구 본사가 각각 선정한 10명의 대표자 240명을 합해 321명으로 구성된다.
반자승 연대의 선봉에는 '종단 정치'에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던 전국선원수좌회(공동대표 정찬ㆍ원각)가 나섰다. 수좌회는 전국 96개 선원 1,800여명의 선승을 대표하는 모임이다. 수좌회는 지난 24일 성명을 통해"자승 총무원장을 중심으로 한 종권 실세들의 부정 때문에 조계종이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자승 스님의 연임 기도를 즉각 중단하고 퇴임하라고 촉구했다.
29일 오후 3시부터 수좌 100여명은 서울 견지동 조계사 내 총무원 청사 1층 로비에서 무기한 '묵언정진'에 나서기로 했다. 수좌들이 종단 문제로 집단으로 총무원 청사에 들어가 연좌 농성하는 것은 1994년 종단 개혁 사태 이후 처음이다. 자칫 '제2의 불교 정화운동'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배경에는 수좌회 좌장 격인 봉암사 적명 스님이 있다. 적명 스님은 1,800여 조계종 선승들 사이에 종정보다 영향력이 클 정도로 신망이 두터운 선지식이다. 적명 스님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앙종회와 총무원이 한 덩어리로 총체적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며 "현 종단 상황은 1994년 종단 개혁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종단 내 2대 계파인 무량회도 반자승 연대에 가세했다. 자승 스님이 속한 화엄회와 무량회 등 종단 내 계파들은 탈 많은 선거보다 총무원장을 추대해 종단 화합을 이루겠다는 명분으로 지난 6월 '불교광장'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자승 총무원장이 연임 포기를 명백히 밝히지 않자 무량회는 불교광장에서 27일 공식 탈퇴했고, 중앙종회 의장을 지낸 보선(66) 스님을 총무원장 후보로 내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광장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계파인 무차회와 보림회도 이달 말과 다음달 초에 잇따라 모임을 갖고 보선 스님을 총무원장 후보로 내세울지를 논의한다.
이런 상황에도 자승 총무원장은 연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하지 않고 있다. 호주를 방문 중인 자승 스님은 28일 시드니 소피텔호텔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선거를 앞두고 스스로 연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지난 4년간은 씨를 뿌리는 과정이었고, 1, 2년이나 10, 20년 뒤에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내홍으로 치닫는 조계종단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일각에서는 수좌회도 종단 내 한 여론 그룹으로써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는 반면 출가한 스님들이 이전투구식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