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8월 29일] 시리아 공습 그 이후

입력
2013.08.28 12:07
0 0

미국에게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되돌아보기 싫은 고통스런 기억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며,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겠다며 시작한 전쟁이었지만 세계로부터 그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원했던 성과를 단숨에 거두지도 못했다. 대신 엄청난 인명ㆍ경제적 피해를 떠안은 채 수렁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에 미국 스스로도 차마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럽고 고달픈 전쟁이었다. 1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으며 시리아가 생지옥으로 변해도 미국이 쉽게 개입하지 못한 것은 두 전쟁의 트라우마가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 시리아에서 화학무기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이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을 점칠 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같은 예상은 며칠 만에 어긋나고 말았다. 29일을 디데이로 잡았다는 등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돌면서 미국의 공습은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책임을 묻겠다"고 시리아 정부를 위협했고,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대통령의 어떤 군사명령도 이행할 준비가 돼있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고통의 땅이라 해서 다른 나라가 함부로 시리아를 공습할 권리는 없다. 누구나 인정할 객관적 증거 없이 이뤄지는 공습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은 화학무기 사용 주체로 시리아 정부군을 지목한다. 시리아 정부와 이란, 러시아 등은 그렇지 않다고 맞선다. 아직까지는 누구도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시리아 정부군 장교의 전화 통화를 감청해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확인했다는 보도가 있지만 다른 나라를 공습할 근거로는 약하다. 일부 전문가는 당시 전세에서 정부군이 반군보다 우위에 있었고 유엔 화학무기조사단이 시리아에 이미 입국해 있었기 때문에 정부군이 굳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고 지금도 주장한다. 따라서 시리아를 공습하려면 이런 궁금증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

공습 이후가 우려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시리아 내전을 본격적인 국제전으로 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사태는 정부군과 반군만의 대결이 아니라 많은 아랍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국제전의 성격을 갖고 있다. 시리아 정부는 이란,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란은 반미 이념을 공유하며 시리아를 돕고 있으며, 헤즈볼라는 시리아 정권을 위해 싸우겠다며 전면적 개입을 선언한 상태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반군에게 군사 장비를 제공하고 이스라엘은 시리아 정부군 시설을 폭격하면서 반군을 돕고 있다.

시리아 내전이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으로 불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복잡한데도 서방이 공습을 감행하면 시리아 한 나라가 아니라 인근 국가들에 두루 영향을 미쳐 아랍권 전체를 소용돌이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국제적인 대재앙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을 친(親)시리아 국가 지도자의 단순한 위협성 발언으로 흘려 들을 것만은 아니다.

백악관 대변인이 "시리아 정권 교체는 옵션에 들어있지 않다"고 발언한 것이나 공습을 단 이틀에 걸쳐 제한적으로만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미국도 시리아 사태가 어떻게 확산될지를 걱정하는 것 같다. "반군이 권력을 장악해도 결코 미국의 이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의 발언은 시리아 정부군도, 반군도 편들 수 없는 미국의 고민을 보여준다. 그런 딜레마를 딛고 이뤄지는 공습이 상황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도리어 걷잡을 수 없이 악화시킨다면 그건 미국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