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제조업체 팬택은 2011년 워크아웃(기업가치 개선작업)을 졸업했지만 작년 3분기부터 연속 적자로 다시 어려움에 처했다.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자금력에서 밀린 탓이다. 팬택은 긴급지원을 요청했고,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27일 1,600억원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채권단이 예상했던 당초 지원규모(2,000억원)보다 20%가량 줄었다. 팬택 주주협의회에 속한 신한은행 등이 끝내 지원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에도 팬택을 지원하지 않았다.
신한은행이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외면하고 있다. '따뜻한 금융'이란 경영철학과는 동떨어진 행태로 기업들 사이에선 "비올 때마다 우산을 뺏는 저승사자"란 얘기까지 나돈다. 워크아웃을 통한 기업정상화를 독려하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방향에 어깃장을 놓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이 구조조정에 놓인 기업들과 갈등을 겪은 사례는 이달 들어서만 3건이다.
법정관리 중인 남광토건의 매각 계획이 차질을 빚은 게 대표적이다. 해당 채권단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출자전환한 지분을 공동매각하기 위한 주주협의회 구성을 13일 최종 부결했는데, 신한은행의 역할이 컸다. 당시 신한 등 일부 은행이 "차라리 현재 가격에 각자 지분을 매각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던 것.
이후 남광토건 주가는 27일 현재 1만700원으로 2주 만에 62.4%나 급락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소수 지분이 있는 일부 채권단이 독자적 지분 매각을 통해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협의체 구성을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남광토건 보유주식은 3.1%에 불과하다.
신한은행은 이달 초엔 워크아웃 기업인 대한조선의 신규 자금지원 계획에 반대하고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대한조선이 배 8척을 짓는데 활용할 계획이던 신규자금 규모도 1,300억원에서 1,100억원으로 줄었다.
금융회사가 책임 소재 공방을 피하기 위해 기업의 잘잘못을 가려 신중히 자금을 집행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경영상 큰 문제가 없는 기업에겐 수익성보다 가능성을 먼저 살피는 게 금융회사의 도리다. 예컨대 대한조선은 발주물량이 많지 않지만 재무구조가 양호한 편이고, 팬택은 지난해 적자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기술력은 인정받고 있다.
신한은행의 잇따른 행보는 한동우 회장이 내세운 경영이념과도 동떨어져있다. 한 회장은 2011년 '따뜻한 금융'을 선포하면서 중기와 서민 금융 지원사업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이 경기 회복을 위해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독려하는데도, 신한은행은 되레 수익성과 추가 자금 부담 우려 등을 이유로 나 몰라라 하고 있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업계에서도 신한은행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무조건 발을 빼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은행은 수익성을 생각하는 사기업인 동시에 공적인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만큼 기업과 직원들의 생존권도 고려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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