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회계컨설팅 그룹 중 하나인 딜로이트는 미국의 워킹맘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다. 미국 대표 여성지인 '워킹 마더'가'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 100곳'에 선정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 일찌감치 재택근무, 단축근무 등을 도입해 자율적인 근무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여성들이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게 했다. 딜로이트는 주기적으로 여성들의 승진 현황, 이직ㆍ전직 비율 등을 점검하면서 혹시 여성들이 근무제도 때문에 불합리한 처우를 받고 있는 건 아닌지도 확인하고 있다.
한국법인인 '딜로이트 안진'역시 본사의 영향을 받아 2010년 9월부터 '플렉시블 타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급여와 근무시간(하루 8시간)은 그대로지만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유연근무제이다. 이 회사에 다니는 '워킹맘' A차장은 "예전엔 출근 때문에 친정 아버지가 매일 아침 집에 와서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줘야 했다. 하지만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이후 출근시간을 30분 늦춰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준 뒤 9시 반까지 출근하고 대신 6시 반에 퇴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입초기 6명에 불과했던 이 제도의 사용자는 1년여 만에 현재 12명(여성 11명, 남성 1명)으로 2배 늘었다.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의 증가는 국가에게도 기업에게도 큰 손실. 전문가들은 경력단절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아직도 적잖은 기업들이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시간에 퇴근하고 한데 모여 일하는 것만이 기강있는 근무형태라 믿고 있고, 때문에 유연근무 자체를 여성들에 대한 '시혜'로 인식하고 있는 게 문제다.
실제로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유연근무제 도입비율을 10%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이는 50% 안팎인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유연근무제 자체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출ㆍ퇴근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제도는 물론, 하루 몇 시간만 일하는 시간제근무(파트타이머), 출근 없이 집에서 일을 하는 재택근무제 등을 도입하기 위해 이에 필요한 직무를 발굴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민무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비스업의 바쁜 시간대에 추가로 투입하는 일자리 등 고용이 안정되고 시급도 괜찮은 업무를 기업들이 많이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눈치 보지 않고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문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지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제도가 있어도 상사의 '곤란하다'는 말 한마디에 못 쓰는 게 현실"이라며 "회사 차원에서 조직 리더급들에 대한 교육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단녀들 스스로 재취업을 위한 자기 계발을 할 필요가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직업훈련을 받으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 개설된 400~500개 과정 등을 활용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육 수당 등을 지급할 때 일 하지 않는 여성보다 일 하는 여성에게 더 많은 지원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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