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7일 발표한 대입제도 개편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운명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수준별 수능 폐기, 고교 내신 절대평가 보류 등에 대해 교육현장은 혼란을 우려하고 있지만 학원가는 새 입시안에 환영 일색이다. 잦은 정책변화로 결국 사교육업체만 배를 불린다는 비판이다.
NEAT∙절대평가 수능 반영도 폐기
수준별 선택형 수능은 올해 첫 시행을 앞두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내년 영어부터 수준별 수능이 폐지되면 현 고3 수험생은 수준별 선택형 수능을 본 유일한 세대가 된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우리가 모르모트(실험용 쥐)냐"는 원망이 나오는 이유다. 일찌감치 영어 수준별 수능에 대비했던 고 1∙2학년들은 헛수고를 한 셈이 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390억원을 쏟아부어 개발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의 수능 영어 대체도 없던 일이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영어로 말할 수 있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사교육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라며 도입된 NEAT가 "오히려 새로운 사교육을 낳고 학생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돼서"라고 박백범 교육부 대학지원실장은 설명했다. 발빠른 학원들은 진작부터 NEAT의 수능 대체를 기정사실화하고 수업을 편성해왔다.
현재의 중3이 고1이 되는 2014학년도부터 고교 내신에 적용될 일종의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도'의 대입 반영도 2019학년도까지 유예됐다. 성취평가제도는 현행 석차에 따른 9등급 상대평가 대신 6단계 절대평가로 내신성적을 매기는 방식인데, 대입에 반영이 미뤄지면서 사실상 무력화됐다. 이 역시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을 결정한 제도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교육학)는 "수준별 수능처럼 논란이나 비판이 많은 정책은 하루 빨리 착오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책이 우리나라처럼 자주 바뀌면 피해를 보는 건 정보 소외층이나 경제적 약자이고 '입시 컨설턴트'의 배만 불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정권과 무관한 입시정책 펴야
정부는 90년대 후반부터 대입정책을 자주 바꿔 수험생에게 혼란과 불안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대입전형 3년 예고제'를 실시해오고 있지만 '교육오년지소계' 관행은 고치지 못하고 있다.
매번 정부는 새 입시정책을 내놓으면서 수험생 부담 완화ㆍ공교육 정상화ㆍ사교육비 경감을 취지로 내세우지만, 정부가 바뀌면 이는 곧 '폐지의 이유'가 된다. 5년 단임제가 유지되는 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의 제도를 없애고 새 정책 도입을 발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94학년도에 처음 시행된 수능만 해도 20년간, 모두 17번이나 제도가 바뀌었다. 현 정부에서 새 입시정책의 도입을 결정했어도 실제 시행 되기까지는 약 4년이 걸리니, 시행 뒤 책임을 물을 곳이 없다는 부작용도 있다.
조상식 동국대 교수(교육철학)는 "한국은 특수하게 새 정부 초기마다 정치적인 욕심과 맞물린 이른바 '입시 드라이브'를 거는 일이 잦다"며 "이런 단명 정책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입시제도를 포함해 교육정책을 정권 교체 여부와 상관없이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연구, 개발, 시행할 독립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다시 나오고 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교육학)는 "정권의 논리에 따라 바뀌는 '5년 단임 교육정책'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정책을 입안, 시행할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며 "가칭 국가교육위원회 같은 독립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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