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정기국회에서 벌어질 '경제민주화 제2라운드'를 앞두고 벌써부터 정치권과 재계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최대 격전지인 상법개정안 외에도 공정거래법, 금융회사지배구조법 등 예민한 법안들이 20여개나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관철시키려는 정치권과 저지하려는 재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재계가 대대적인 공세모드로 전환했다는 점. 정권 초 바짝 숨죽이고 있던 재계는 정부의 경제민주화 추진의지가 생각했던 것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 입법저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도 지금은 경제민주화보다 경제 살리기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 분위기는 좀 다르다. 여당지도부는 대체로 경제민주화 속도완화에 무게를 두는 듯 하지만 개혁성향의 소장파 의원들 목소리는 여전히 강하다. 야당 역시 강도 높은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여, 정기국회에서 대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상법 개정안 외에 재계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공정거래법이다. 현재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 발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만 해도 ▦순환출자 금지 및 해소 ▦공정거래 위반행위에 대한 집단소송제 도입 등 10여 개나 된다. 공정거래법은 이미 올 상반기 일감몰아주기 규제 및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차례 개정된 상태인데, 정치권이 더 강한 공정거래법을 원하고 있어 재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세부항목 중에서도 재계가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건 신규순환출자 금지이다. 재계는 순환출자를 막으면,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신규투자가 어려워져 기업의 잠재성장여력을 갉아먹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김기식 의원이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신규 순환출자뿐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도 금지(3년 유예기간 내 해소)하는 메가톤급 내용을 담고 있어, 재계의 반발강도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현행 은행에만 적용하고 있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보험 및 카드사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구조법'도 쟁점법안이다. 이미 6월 임시국회 때 제출돼 법안심사 소위에서 논의됐지만 재계의 반발이 워낙 거세 결론을 내지 못하고 9월 정기국회로 넘어 왔다. 보험 및 카드사는 은행과 달리 대기업 소유가 많아, 정부가 대주주자격을 정기적으로 심사하는 것에 재계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비금융계열사 지분에 대한 대기업 금융계열사들의 의결권 제한(현행 15%→ 2017년 5%) 조항도 큰 논란거리다. 이 조항이 입법화되면 삼성계열의 삼성생명, 한화계열의 한화생명 등은 계열사의결권 행사에 큰 제약이 생기며, 이렇게 되면 적대적 M&A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반발이유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금융사 지배구조와 관련한 법 개정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발상"이라며 "비금융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에 제한을 두면 생산과 투자를 위해 쓰여야 할 자금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쓰이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에 딱 들어 맞는 건 아니지만, 통상임금도 폭발력 강한 의제다. 현재 국회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고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제기되어 있는데, 이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상여금까지 통상임금에 넣으면 퇴직금 액수가 그만큼 늘어나게 되는데, 경총 관계자는 "통상임금기준을 바꿀 경우 약 38조원의 기업부담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재계는 또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시간으로 인정할 시에는 주당 최대 근로가능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어 경영과 생산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반드시 법안이 관철되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 문제를 다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대표적 '강성상임위'로 꼽히고 있어 재계는 더 긴장하고 있다.
이른바 '남양유업 방지법'으로 불리는 대리점거래공정화법도 국회 법안심사 소위에 계류 중이다. 향후 불공정거래 발생시 대기업에게 징벌적 손해배상(3배)과 과징금을 물릴 수 있고, 대리점주들에게 단체협약권을 보장해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이 담겨 있는데 재계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과징금을 동시에 적용하는 것은 이중처벌이며 대리점주들에게 단체협약권을 부여할 경우 담합의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도 ▦기간제근로자보호법(차별시정신청권을 노동조합에 부여) ▦노동조합법(교섭창구단일화제도 폐지ㆍ사용자의 직장폐쇄 요건 강화) ▦사면법(배임ㆍ횡령 등 경제범죄에 대한 대통령 사면권 제한) 등에 대해 재계는 한결같이 경영권 위축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올 상반기 국회에서 통과된 경제민주화 관련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한 하도급법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한 공정거래법 ▦금산분리를 강화한 금융지주회濚?및 은행법 등 총 9개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니냐"는 재계의 주장에 대해 "28건 법안 가운데 9건밖에 통과되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정치권 입장에서, 이번 정기국회의 대격돌을 엿볼 수 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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