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탁구경기가 아니다. 상대가 공을 못 받게 하는 게 아니라 공을 받게 하는 게 정치다. 지금 여야가 보여주는 정치는 이기려고만 하는 탁구경기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검찰 기소를 거쳐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까지 갔는데도 26일 "국정원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며 해묵은 5자회담을 다시 꺼냈다. 그러자 다소 유연해지던 새누리당은 다음날 민주당의 장외투쟁과 대선불복 기류를 비난하는데 열을 올렸다. 이에 민주당은 부산 촛불집회에 대거 참여하고 전국 순회집회를 갖기로 했으며 김한길 대표는 '선(先)양자회담 후(後)5자회담'을 역제안했다.
여야 모두 상대의 굴복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어 정국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국이 경색될수록 정치력이 발휘돼야 하는 법. 완강한 여야의 논리를 차근차근 따져보면, 접점 마련이 어려운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본질을 살펴보자. 그것은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느냐, 개입했다면 대선 불복을 초래할 정도냐이다. 재판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검찰 기소 등으로 볼 때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보는 게 상식일 것이다. 다만 이에 연루된 국정원의 박원동 국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새 정부 들어서 낙마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박 대통령이 인지하거나 지시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사실일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대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소수로 나타났으며, 민주당 당직자들도 "대선 불복 의사는 없다"고 말한다.
대선 불복이 아니라는 전제가 선다면, 해법을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인지하지 않았다 해도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경찰의 무혐의 중간수사발표가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였던 만큼 국정 최고책임자로써 포괄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필요하다. 민주당도 대선 불복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해야 한다. 여야 간에 그런 신뢰가 구축된다면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국정원 개혁은 당연한 수순이 되며, 양자회담이든 5자회담이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박 대통령을 비롯 여야가 유연성을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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