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이상민 등 93~94시즌 최강 연대팀과의 가상 승부에"비교 자체가 영광" 이라면서도 조심스레 우위 점치며 자신감"모든 대회 우승을 목표로 농구역사에 남을 만한 팀 기대물 들어올 때 배를 밀어야"이민형 감독, 새로운 출사표
1990년대 농구대잔치의 판박이였다. 신선한 얼굴들이 코트를 마음껏 누볐고 화려한 플레이는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고려대가 지난 22일 막을 내린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첫 대학 우승 팀으로 등극했다. 농구대잔치 시절인 1993~94 시즌 연세대가 실업 팀을 처음으로 꺾고 정상에 오른 순간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이민형 고려대 감독은 26일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선수들이 이른 시일 내에 큰 일을 해내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나왔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고려대의 우승 주역인 '트윈 타워' 이종현(19ㆍ206㎝)과 이승현(21ㆍ197㎝) 역시 "월드컵(세계선수권) 출전 티켓을 딴 다음 관심이 쏠린 큰 대회에서 우승해 기쁨이 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20년 전 연세대랑 붙으면 승자는?
한국 남자 농구의 지각 변동은 20년 전 연세대가 일으켰다. 1993년 휘문고를 졸업한 1학년 센터 서장훈(207㎝ㆍ은퇴)이 가세한 연세대는 93~94시즌 기아자동차의 전성시대를 끝내고 우승했다.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흐른 올해 고려대 역시 1학년 센터 이종현의 등장과 함께 형님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과거의 연세대와 현재의 고려대가 만난다면 어떤 승부가 날까. 이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이 감독은 "고대 이충희 임정명, 중대 허재 강동희, 연대 이상민 서장훈 등 시대의 흐름이 있었다"고 단서를 붙인 뒤 "어쨌든 지금은 신장이 좋은 우리가 최강 팀이라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승현과 이종현의 생각도 같았다. 이승현은 "비교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라면서도 "아무래도 키가 큰 우리 팀이 유리하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이종현은 "그 당시 서장훈 선배보다 키 큰 상대가 없었다. 우리 팀은 나도 있고 4번(파워포워드) 자리에 승현이 형이 있어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 들어올 때 배를 밀어야 한다
당분간 대학 농구는 고려대가 독주할 가능성이 높다. 경희대의 '빅 3' 김민구-김종규-두경민은 올 시즌을 마치면 졸업한다. 연세대가 맞수로 떠오르지만 고려대의 막강 높이를 넘기엔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고려대는 내년에 이승현이 4학년, 이종현이 2학년으로 진학한다.
이종현은 "승현이 형이 졸업하기 전에 가능한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이승현은 "나 없어도 고려대는 잘 할 것"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이 감독은 "좋은 멤버들을 보유하고 있으니 모든 대회 우승을 목표로 해야 한다"라며 "한국 농구 역사에 남을 만한 팀으로 만들고 싶다. 물 들어올 때 배를 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현과 이종현은 다른 어떤 대회보다 연세대와의 정기전에 무게를 뒀다. 이승현은 "정기전은 1년 중 가장 큰 행사"라며 "전력보다 체육관에서 나오는 뭔가 모를 분위기에 승부가 갈린다"고 설명했다. 다음달 27일 첫 정기전을 앞둔 이종현은 "정기전에서 이겨야 내년에도 편할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이승현-이종현 "2014년 태극마크 꼭 달고 싶다"
'왼손 현주엽' 이승현과 '제2의 서장훈' 이종현은 내년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목표다. 2014년은 한국 농구의 운명이 걸린 해다. 내년 9월 스페인 농구월드컵에 한국 농구가 16년 만에 출전하고, 10월엔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린다. 특히 국내에서 펼쳐지는 아시안게임에 비중이 쏠린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 탈환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올해 대표팀 예비 명단에 들었다 탈락의 아픔을 겪은 이승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외곽슛과 1대1 기술, 드리블, 외곽 수비 등 보완할 점을 깨달았다. 올해 동계 훈련에서 부족한 점을 채우고 내년에 잘 한다면 대표팀 발탁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아시아선수권에서 좋은 인상을 남긴 이종현은 "나 역시 1대1 기술과 슛 연습을 더 해야 한다. 뽑아만 준다면 정말 잘 뛸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태극마크는 어떤 의미로 다가 올까. 이승현은 "애증보다 또 다른 과제를 내주는 존재"라며 "대표팀에 갔다 오면 탈락하더라도 느끼는 게 많고, 채워야 할 부분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종현은 "항상 태극마크를 달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국제대회에서 몸을 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가슴에 손을 올리면 뿌듯함이 굉장하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해서라도 두 선수가 대표팀에서 잘해줘야 한다"고 힘을 실어줬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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