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풍요롭고 여유로웠던 시절, 유럽의 정상들은 많게는 한달 넘게 일상을 벗어나 장기 여름휴가를 만끽했다. 하지만 이젠 사치일 뿐, 장기 여름휴가는 1~2주로 줄었고 자국을 떠나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그나마 짧은 휴가기간마저도 일손을 놓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가 유럽연합(EU) 소속 국가 정상들의 오랜 여름휴가 관행을 바꾸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달 초 파리에서 차량으로 20분 가량 떨어진 정부 소유의 한 별장에서 1주간의 휴가를 보냈다. 연금제도의 전면적인 개혁과 예산지출 삭감을 추진 중인 올랑드 대통령은 휴가 중에도 업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달 초 장관들에겐 2주간의 휴가를 주면서도 "비상소집에 대비해 파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머물라"며 사실상 '출국금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엔리코 레타 총리와 각료들 역시 8월 한 달간 로마를 떠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유럽발 재정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의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리는 올 여름 사흘밖에 쉬지 못했다.
이는 예전과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독일의 헬무트 콜 전 총리는 16년의 집권기간 매년 4주간의 여름휴가를 보냈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2003년 여름휴가를 캐나다 퀘벡에서 보냈고,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재임기간 몇 주씩 미국과 지중해에 머물렀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역시 몇 주 또는 한달 가량 휴가를 내 그림을 그리거나 술을 마시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젠 옛말이 돼버린 장기 여름휴가에 대해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의 프레드릭 에릭슨 소장은 "경제위기로 유럽 정상들의 짧아진 휴가가 하나의 추세가 됐다"면서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휴가와 같은 문제로 정상들을 평가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현재 17개 유로존 국가들의 평균 실업률이 12.1%에 달하고, 특히 스페인과 그리스의 실업률은 내년 말 28%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았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