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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이야기/8월 28일] 도로명 새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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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이야기/8월 28일] 도로명 새 주소

입력
2013.08.2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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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내년부터 도로명 주소 시스템이 전면 시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과 4개월 후다. 책상에 나뒹구는 각종 고지서들의 겉장을 살펴보았다. '무등로'로 적혀 있는 우리집 주소. 괄호 안에 아직은 '계림동'이 병기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이조차도 쓰이지 않는다는 건가?

새 주소 시스템에 대한 공고를 접한 건 벌써 몇 년 전부터였다. 그 동안 큰 길 작은 길에, 골목길의 주택들에, 새 주소 푯말이 붙는 걸 지켜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 덕에 두어 번 길을 헤매다가 도움을 받은 적도 있는 것 같다. 새 주소가 한국 사정에 안 맞는다는 말도 들렸지만, 한편으론 나름 편리한 데가 있구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 주소'로 돌아오면 마음이 달라진다. 앞으로 편리할 수도 있는 도로 이름보다, 나의 시간이 묻어있는 동네 이름이 더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몇 개월 후면 입에 익은 이 주소를 역사 속으로 보내야 하다니. 내 유년의 동네 '효자동'은 '공지로'에, 사춘기의 마음을 흘리고 다니던 '후평동'은 '서부대성로'에 묻혀 버리는 건가.

어떤 박탈감이 몰려온다. 내 삶에 달라붙어 있던 일부가 강제로 뜯겨져 나가는 기분. 내가 살던 동네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들곤 하는 그리움, 애증, 슬픔, 쓰라림 같은 감정들도 함께 삭제되어 버리는 것만 같다.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을 강요당할 때에도 사람들은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갑작스러운 상실감 말이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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