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감사원장은 26일 이임사에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양 원장이 실제 업무에서는 '오락가락한' 처신으로 도리어 감사원을 정치외풍의 복판에 서게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양 원장의 이중적 처신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전격 사퇴를 불렀고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과제로 남겼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양 원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거취 논란에 휩싸였다. 청와대가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감사원장의 교체를 밀어붙이려 했고 양 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임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맞섰다. 이 때까지만 해도 양 원장은 감사원의 중립성을 수호하는 상징 인물처럼 비쳐졌다. 결국 청와대도 양 원장의 유임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임이 확정된 이후 양 원장은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양 원장은 4월8일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유임전화를 받은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논란을 자초했다. 당장 정치권에서 "독립기관의 장으로서 신중치 못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석상에서 "통화 내용 공개는 감사원이 대통령과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다"며 "그러니 감사원이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원장이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올해 감사 방향도 도마에 올랐다. "박근혜정부 시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새 정부 초기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재정의 효율적 운용과 공직직무 감찰에 힘을 쏟겠다"는 그의 발언이 '코드 감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양 원장이 박근혜정부에 코드를 맞추는 듯한 감사활동은 실제 결과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관심을 가졌던 한식세계화 사업과 경인운하 등에 대한 감사 결과가 대표적이다.
특히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문제 없다"던 2011년의 1차 감사결과를 뒤집고 '대운하를 염두에 두었다'는 내용의 4대강 감사결과는 감사번복 논란을 빚으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4대강 감사결과는 양 원장이 여권 전체와 충돌하는 계기가 됐다. 친이계는 맞춤형 감사라면서 양 원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고, 친박계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마저 '감사원의 셀프 감사'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양 원장의 코드 맞추기 행보는 그렇다고 청와대를 만족시킨 것도 아니었다. 청와대는 4대강 감사결과조차 논란을 빚게 되자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양 원장의 사퇴 배경을 둘러싸고 감사위원 인사갈등설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양 원장의 '언론플레이'를 의심하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어쨌든 양 원장의 사퇴파동으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은 또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당장 야당에서 "헌법에 보장된 감사원의 독립성이 무참히 훼손됐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청와대가 향후 감사원장이나 공석인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감사원의 독립성 논란은 재연될 수 있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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