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맨손으로 의류업계에 뛰어들어 중견 패션그룹을 일궈낸 박순호(67ㆍ사진) 세정그룹 회장이 25년 만에 또 한 번 승부수를 띄웠다. 1988년 의류 도매상으로는 최초로 대리점 체제로 전환, 위기를 탈출했던 그가 이번에 뽑아 든 카드는 '국민의 옷집'을 목표로 한 복합매장이다.
박 회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남성복 브랜드'인디안'매장을 복합 쇼핑몰 개념의 '웰메이드'(WELLMADE)로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니클로 자라 같은 글로벌 SPA(제조ㆍ유통일괄의류)브랜드들의 공세에다 경기침체까지 겹쳐 중견 패션기업들이 부도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여러 종류의 상품을 한 곳에서 구매하고자 하는 원스톱 쇼핑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웰메이드 매장을 도입키로 했다"고 말했다.
'웰메이드'는 비즈니스 패션부터 아웃도어 패션까지 생활 전반에 필요한 패션 아이템을 모두 취급하는 매장으로, 20대부터 60대까지 가족 모두가 방문할 수 있는 '국민 옷집'을 지향하고 있다. 세정그룹은 기존에 있던 전국 384개의 인디안 매장을 리뉴얼해 '웰메이드'로 새롭게 탄생시킬 계획이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패션업계의 입지전적 인물. 초등학교만 졸업한 채 마산에서 의류상점 점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1974년 부산중앙시장에 동춘섬유공업사란 의류회사를 차렸다. 이때 그의 나이 28세. 그는 책 표지에서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인디안'브랜드를 붙여 의류를 서울 남대문시장 등에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품질이 좋아 불티가 날 정도였다.
1988년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의류도매상에서 대리점 체제로 전환을 선택한 것.박 회장은 "1980년대 후반 경기 호황으로 시장이나 양품점에서 옷을 사던 소비자들이 브랜드 매장에서 옷을 사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고 대리점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당시 직원들은 "장사가 잘 되는데 굳이 왜 생소한 대리점으로 가느냐"고 반대하기도 했지만, 박 회장은 도매상으론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해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인디언 브랜드는 대리점체제 전환 이후 연평균 30%의 고속성장을 일궈냈다.
박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웰메이드를 "세정의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새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창립 40주년을 코 앞에 두고 지난해 적자전환 하는 등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베여있다.
세정그룹은 9월 말까지 인디안 매장의 간판을 모두 웰메이드로 바꾸고, 내년 말까지 모든 매장의 인테리어 작업도 끝낼 계획이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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