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직업이 없는 이모(22)씨는 고교 동창 홍모(21)씨와 함께 지난달 21일 오후 7시쯤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에 혼자 사는 아버지(55)를 찾아갔다. 이들 손에는 쇠파이프와 흉기가 들려 있었다. 얼마 후 이들은 콜택시를 불러 여행용 가방에 아버지 시신을 담아 사전에 물색한 전남 나주시의 한 저수지에 유기했다. 이씨는 아버지 아파트를 부동산중개소에 매물로 내놓았고 황금열쇠 등 귀금속도 처분했다. 홍씨에게는 아버지 카드로 1,000만원 상당의 국산 중고승용차를 사줬다.
범행은 분가한 이씨 누나가 지난 24일 "아버지와 연락이 안 된다"며 실종 신고를 하며 경찰에 발각됐다. 이씨와 홍씨는 각각 1,000여 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경찰은 26일 이씨와 홍씨, 시신 유기를 도운 이들의 여자친구 배모(15)양과 정모(16)양에 대해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부모나 조부모 등 직계존속을 살해한 사건은 지난 2008년 45건에서 2009년 58건, 2010년 66건, 2011년 68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50건으로 다소 줄었지만 이달 20일 서울 강동구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조모(23)씨가 붙잡히는 등 최근 다시 증가 추세다. 직업 없이 빈둥거리는 20~30대 빈대족이 존속 살해의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2008년부터 5년간 존속살해로 검거된 305명(공범포함) 중 20~40세는 157명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경제활동 주체가 돼야 할 연령대가 사실상 존속살해의 주범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존속살해범 가운데 111명은 경찰에서 "우발적 범행"이라고 진술했다. 가정불화(55명)와 현실불만(19명)도 주요 살해동기였다. 통계상으로 금품 등 이욕에 눈이 먼 존속살해범이 10명뿐이다.
하지만 이를 한꺼풀 벗겨보면,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단절된 무직자들이 가족과 오랜 갈등을 누적한 상태였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가정폭력이나 금전적 문제 등을 둘러싼 불화와 갈등이 한 순간 범행으로 비화한다는 것이다. 수원시 이씨와 마찬가지로 서울 강동구 조씨도 무직이었고, 사채 빚 독촉에 시달리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금품을 훔쳤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만연하며 가족들이 돈 앞에서 원수가 되고 아이들은 자기 위주의 생각이 매우 강해졌다"며 "다른 사람과의 문제는 회피하면 되지만 가족은 오랜 시간 함께 있어야 해 감정 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고 분석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결국 경제적 궁핍과 이혼, 가정폭력 등 가정을 쪼개는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끌어 안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복지기능을 가정복원에 맞추는 정책 방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수원=김기중기자 k2j@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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