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32)씨는 결혼 직전인 2009년 말 경기 안양시의 66.6㎡(20평) 아파트를 전세로 구했다. 보증금 1억3,000만원 중 5,000만원이 대출이었다. 2년 뒤 집주인은 월세(70만원) 전환을 요구했고, 부담이 됐던 김씨는 부근 아파트에 전세로 이사를 가면서 다시 은행에서 5,000만원을 빌려야 했다. 기존 대출 중 2,000만원을 갚지 못한데다 새 아파트로 옮기면서 3,000만원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계약만료가 다가오는 올해 말이 걱정이다. 대출잔금은 3,000만원인데 전셋값은 또 오른 탓이다. 그는 "기존 전세대출을 다 갚지 못한 상황에서 재계약 일정이 다가오는 쳇바퀴 인생"이라고 씁쓸해했다.
직장인 이모(43)씨는 2010년 말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원래 2억2,000만원)을 8,000만원 더 올려달라는 요구에 응했다. 아내가 만삭이라 이사하기 어려워 보험 등 금융상품 7,000만원을 전부 해지해 마련했다. 지난해 말 집주인은 5,000만원 인상을 통보했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집주인 보란 듯이 더 큰 평형으로 이사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야 했다"고 했다.
전셋값 급등이 서민들의 꿈을 앗아가고 있다. 전세보증금을 묻어두고 열심히 모은 돈을 보태 집을 사는 내 집 마련의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치솟는 전세금 탓에 2년 뒤에도 빚을 다 갚지 못하거나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소득 증가액으론 도저히 전셋값을 맞출 수가 없는 지경이다.
서울에선 최근 5년간 전셋값이 1억원 넘게 오른 아파트가 10가구 중 2곳인 것으로 조사됐다. 26일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주상복합 포함) 108만9,652가구의 전세가격을 조사한 결과, 2008년 이후 1억원 이상 상승한 곳은 19만2,413가구(18%)였다. 평균 전세가격은 6,651만원(2억234만원→2억6,885만원) 올랐다. 2년 후 재계약 때마다 3,000만원 이상 올려줘야 했던 셈이다.
반면 연 소득은 681만원 오르는데 그쳤다. 5년치 소득 증가액을 모두 저축한다 해도 3,400만원 정도라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최근 4년간 전세자금대출은 무려 12조원 넘게 늘었다. 통계청의 2분기 가계동향을 살펴봐도 가계의 저축능력을 보여주는 흑자금액은 월 88만원이다. 2년간 꼬박 저축해도 2,112만원에 불과하다. 역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 상승치를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민들은 전세를 얻기 위해 빚을 내고, 2년 뒤 쫓겨나지 않기 위해 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전ㆍ월세상한제가 시장질서를 교란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거론되는 것도 이런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김미선 부동산써브 연구원은 "정부의 세밀한 전세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하반기엔 전세물량이 더 부족해져 전세가가 1억원 넘게 상승한 가구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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