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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00> 웃음 주고 떠난 코미디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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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00> 웃음 주고 떠난 코미디 황제

입력
2013.08.2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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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번 와 보시라니깐요.", "콩나물 팍팍 무쳤냐?"

'수지큐' 노래에 맞춰 오리 춤을 추며"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더듬대던 사람. 우리는 그로 인해 웃을 수 있었고 행복했었다.

2002년 8월27일 한국 코미디의 큰 별 이주일(본명 정주일)씨가 폐암으로 투병하다 향년 62세를 일기로 조용히 숨을 거뒀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지 10개월 만이다. 그의 사망 소식은 온 국민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가 단지 유명 코미디언이어서가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에게 큰 웃음과 희망을 주었던 시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1940년 강원 고성에서 태어난 이씨는 쇼단을 따라 전국을 떠돌다 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때 가수 하춘화를 구해준 일을 계기로 밤무대에 서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TV에서 별 환영을 받지 못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80년 1월 방송된 TBC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이라는 코너에서다. 단역으로 출연한 그는 줄을 타다 실수로 물에 빠진 후 특유의 표정으로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이후 등장할 때 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유행어와 함께 오리 춤을 히트시키며 단숨에 코미디의 황제로 등극했다. 2주 만에 떴다고 해서 이름도 정주일에서 이주일로 바꿨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의 인생 행로에 시련과 변화가 찾아왔다. 91년, 7대 독자이던 28세의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담배에 의존하며 절망감에 사로잡혀있던 시절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정치를 권유했고 이듬해 치러진 14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경조사에만 불려 다니며 정치인으로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4년 후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라는 명언을 남긴채 정계를 떠났다. 이 후 SBS '이주일의 투나잇 쇼'를 통해 연예계에 복귀했다.

원로 코미디언의 길로 접어들던 2001년 폐암 말기라는 청천벽력의 소식이 찾아 들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을 만큼 병세는 위중했지만 그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오히려 금연 홍보에 나서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2002년 8월27일 오후, 세상과 조용히 작별한 그에게 정부는 문화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이씨를 비롯해 백남봉 배삼룡 김형곤 등 '슬랩스틱 코미디'(액션을 과장한 희극)로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던 왕년의 코미디언들이 그리워진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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