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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8월 27일] 우리들의 여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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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8월 27일] 우리들의 여름에 대하여

입력
2013.08.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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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고 끈적했던 여름이지만 이제 뒤끝이다. 새벽엔 서늘한 바람이 분다. 기억할만한 계절이 한번 또 지나간다. 올여름 특히 반도의 남부는 졸아붙듯 뜨거웠다. 누군가 울산이나 대구에 산다 하면 조건 없이 위로해주고 싶어진다. 2013년 여름도 다시는 오지 않을 과거로서 없어져 간다. 우리는 가장 힘들었던 이런 계절도 성찰하고 보낼 수 있다.

온밤을 설치게 한 열대야와 각다귀, 냄새를 풍기는 옷과 몸, 땀에 젖는 노동도 여전하다. 그러나 우리 여름은 바뀌고 있다. 이전처럼 홍수나 태풍 때문에 수백여 명이 죽고 수천 명이 이재민이 되는 일은 거의 없고, 뇌염이나 이질 때문에 수만 명이 고생하는 일도 드물다. 과학과 민주주의 덕분이다. 미시적으로도 여름 풍경은 변해간다. 반바지와 에어콘 없는 여름을 상상할 수 있을까? 격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샌들 신고 핫팬츠 입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 한국인이 과연 아열대 지역 사람들처럼 느긋하고 느린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 에어콘이 먼저 가로막는다. 에어콘 없이 생산성은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에어콘은 느릿느릿 천천히 하거나 또는 아예 쉴 일을 끝내 해내게 만든다. 그러니 에어콘은 일단 기업주의 편이다. 착취를 보장하고 이 자본주의가 그 속도대로 계속 돌아가게 만든다. 그런데 28도에 맞추라니. '전력대란'을 계속 떠들어대지만, 짜증나는 매미소리 같다. 대란의 책임은, 옹기종기 모여 에어콘 바람이나 좀 쐬는 보통사람들에게 있지 않다. 에어콘은 차라리 우리가 인간이게끔 도와주는 기계이기도 하다. 에어콘은 수면부족에 전 혼곤한 노동을, 챙기지 못해 어딘가 땀내나는 몸들을 위로하고 감춰준다.

기상청은 1994년의 여름을 '기록'으로 써두고 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그해 여름의 고생담을 꺼내 비교해본다. 김일성의 죽음과 병영에서의 비상대기, 대입종합반과 고등학교 교실의 고난, 월드컵에서의 황선홍의 '똥볼', 그리고 이름을 붙일 수 없던 숨막히고 짜증나는 불안들. 올해는 분명 그해보다는 기온이 낮았다. 그럼에도 참을성이 더 줄어든다. 한반도의 기후 자체는 점점 더 유난스러워진다. 기후가 사회를 닮는지, 사회가 기후 때문에 그런지 알 수 없으나, 점점 더 반생태적이고 점점 파괴적이다. 스스로는 성찰할 힘이나 여유가 없어지고, 좋아질 기미 자체가 흐릿해지고 있다.

열기와 습기는 누구에게서나 체모나 우아함을 약간 유보하게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여름의 생물학적ㆍ화학적 작용은 더 불공평하다. 여름은 땀에 쩐 옷을 입고 노동하는 자들을 더 비천한 인간으로 만들고, 에어콘을 살 수 없거나 늙은 육체를 가진 이들을 더욱더 소외시킨다. 94년보다 뭐가 나아졌을까?

여름은 분명 온갖 생명을 자라게 하지만 비틀린 생명현상도 세상에 꽉 차게 한다. 거대한 녹조 호수가 돼 버린 '4대강'이 그렇다. 계속된 무더위 때문에 낙동강 주변엔 새들이 이상증식하고 또 떼로 죽어, 살아있는 그놈들의 똥오줌과 죽은 몸들이 강물을 시궁창처럼 변하게 하고 있다 한다. 물이 잘 흐르지 못하게 된 강의 지천도 녹조로 꽉 찼다 한다.

도를 넘은 습기와 열의 생화학작용은 도시에도 변종 곰팡이가 잔뜩 슬게 한다. 올여름 한국인들을 열 받게 한 것 중에는 '국정원'이란 것도 단단히 한몫 했다. 이명박 이래 진행된 정치의 쓰레기화, 쓰레기의 정치화는 이제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처럼 돼가고 있다. 대의나 공리의 우물은 말라버리고, 뻔뻔함의 독충들이 온 대기 위에 왱왱 그린다. 그들은 몇 가지 허위적인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마구 그것을 우려먹고 착취하며, 정치라 우긴다. '북한, 전라도, 노무현, 좌파' 들은 그 희생양의 이름들이다.

그러나 이 힘든 계절에도 믿을 수 없는 기적처럼 새로 사랑을 시작하고, 또 밝고 맑은 새 삶을 얻은 사람들도 있으리라. 땀 흘리며 창조하고, '설국열차'처럼 낯선 희망을 만나기 위해 분투한 사람들도 많으리라. 선언과 촛불의 온도는 정신 나간듯한 열과 습을 다 압도하진 못했지만, 진짜 추운 겨울이 오지 않게 마음을 데울 연료가 되리라.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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