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특파원 시절 즐겨 가던 곳 중에 하나가 집 근처에 있던 서점 체인점 보더스였다. 책을 골라 서점 한쪽 켠에 있는 커피숍에 앉아 호젓하게 읽는 재미가 좋아서 주말에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 몇 시간씩 진을 치고 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 입구에 커다랗게 '청산 세일'이라고 쓴 광고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온라인 광풍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한 것이다. 재고 땡처리로 책 몇 권을 사 갖고 나오면서 40년 역사의 미국 2위 서적 체인점이 이렇게 허망하게 문을 닫는 것에 씁쓸해 했던 기억이 선하다.
▲ 2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서적 체인점 1위인 반스&노블이 휘청거리고 있다. 보더스와 마찬가지로 전자책, 태블릿PC 등에 시장을 급속히 잠식당한 탓이다. 야심차게 내놓은 전자책 전용단말기 '누크'가 출판계의 절대지존이라는 아마존의 '킨들'에 밀리면서 시가총액이 최근 10여년 새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최고경영자가 지난달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이대로라면 보더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 전통의 오프라인이 온라인 공세에 치여 퇴출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비디오 대여업체로 잘 나가던 미국의 블록버스터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에 밀려 파산한 게 3년 전이다. 미국의 신문들은 온라인에 광고를 뺏기면서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130년 역사의 권위지 워싱턴포스트가 생긴 지 20년도 채 안된 아마존에 인수된 것이 상징적이다. 오프라인 서점을 고사시키고 워싱턴포스트까지 집어삼킨 공룡 아마존의 세력이 어디까지 확장될 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우리 서점업계의 형편도 다르지 않다. 미국과 비슷한 이유로 1994년 5,700여개에 달했던 전국의 서점이 2011년에는 1,700여개로 줄었다.
▲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만이 아니다. 책을 고르고 읽으면서 마음의 안식을 찾는 문화공간이자 사랑방 같은 곳이다. 그러고 보니 가슴이 좀 찔린다. 싸게 사겠다고 책은 서점에서 고르고 주문은 인터넷에서 하곤 했던 내 행태가 반스&노블이나 보더스의 추락에 일조한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든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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