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카이라이와 왕리쥔은 갈라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왕리쥔이 내 가정을 침범했다."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가 심복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자신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를 은밀하게 사랑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문화대혁명 4인방(四人幇)에 대한 단죄 이후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세기의 재판'이 불륜 드라마로 내달리고 있다.
26일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보 전 서기의 뇌물 수수 등에 대한 닷새째 공판에서 보 전 서기는 검찰의 공소 의견에 맞서 2시간 넘게 변론을 폈다. 그는 자신이 영국인을 살해한 부인을 비호하기 위해 왕 전 국장을 폭행, 면직함으로써 왕 전 국장이 미국 영사관으로 도주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반역 도주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며 운을 뗐다. 보 전 서기는 "구카이라이와 왕 전 국장은 떼어놓을 수 없는 1급 특수관계였다"며 "왕 전 국장은 구카이라이의 소개로 우리 집에 발을 들였고 구카이라이는 왕 전 국장 말이라면 무조건 믿었다"고 했다. 그는 "왕 전 국장은 구카이라이를 몰래 연모했고 감정이 뒤엉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속마음을 구카이라이에게 털어놓았다"며 "이는 한 편의 코미디"라고 토로했다. 보 전 서기는 "이 모든 게 두 사람의 편지에 적혀 있다"며 "왕 전 국장이 구카이라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할 때 우연히 물건을 가지러 집에 들렀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왕 전 국장이 우리 가정을 침범했고 나의 기본 감정을 침해했다"고 울분을 삼켰다. 결국 보 전 서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왕 전 국장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미국 영사관으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왕 전 국장이 지난해 9월 법정 최후 진술에서 "사심이 있어 구카이라이를 도왔다"고 한 점을 감안할 때 보 전 서기의 주장은 신빙성이 커 보인다.
보 전 서기는 24일 공판에선 구카이라이가 중학생이던 아들 보과과(博瓜瓜)를 데리고 갑자기 영국 유학을 떠난 것은 자신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라고 공개했다.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도 지난해 보 전 서기에 대한 조사에서 그가 여러 명의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거나 유지해 왔다고 발표했다.
보 전 서기는 이날 "검찰의 증거 자료가 무려 90권에 이르지만 이중 나와 연관되는 게 얼마인지 모르겠다"며 "검찰의 증거는 견강부회"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입고 있는 이 면바지도 1960년대 어머니가 사주신 것"이라며 "뇌물을 받거나 공금을 횡령하는 것은 우리의 가풍이 아니니 검찰은 우리 집안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라"고 꾸짖기도 했다. 보 전 서기는 중국의 8대 혁명 원로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아들이다.
보 전 서기는 최후 변론에서 "성질이 불 같고 집안도 다스리지 못해 결국 나라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만감이 교차하며 내게는 이제 여생 밖에 남지 않았다"고 착잡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직권을 남용한 적도, 뇌물을 받은 적도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재판부는 기일을 정해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구카이라이의 경우엔 심리 종결 10일 후 선고가 있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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