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정부인 안동장씨 추모 휘호대회'가 다음달 29일 안동 성희여고 체육관에서 안동청년유도회 주최로 열린다. 안동장씨는 조선시대 '여중군자'로 불린 장계향(1598-1680)이다. 의 저자로 더 알려진 안동장씨는 시문서화와 자녀교육에 뛰어났고 흉년에는 구휼활동에도 팔을 걷어부쳤다. 신사임당을 뛰어넘는 조선 여인상으로 알려지면서 경북도와 지자체의 선양사업도 활발하다.
작가 이문열(66)의 소설 은 바로 안동장씨 이야기다. 작가의 13대조 할머니기도 하다. 20년 전 출간된 이 소설은 "봉건시대 희생적 여인상을 강요한다"며 여성단체의 격렬한 반발과 페미니즘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동장씨는 어떤 인물인가.
"몇 가지 예를 들겠다. 할머니 일곱 아들 중 일찍 세상을 떠난 한 명을 제외한 여섯 아들이 모두 문집을 남겼다. 할머니는 50살이 넘은 아들도 가르쳤다. 당신이 일흔을 넘기고서도 손자가 을 뗐다고 하면 직접 시제를 던져 확인해볼 정도였다고 한다. 또 초서에도 능했다. 노산 이은상 선생도 '조선에 초서 잘 쓰기로는 장씨부인'이라고 적었을 정도로 시문서화에 두루 능했다. 내조와 효도는 물론 이웃에 대한 배려가 깊어 흉년엔 마을의 구휼에 나서기도 했다. 아침 일찍 연기 안 나는 집을 알아본 후 쌀을 보낸 기록이 남아 있다. 쌀이 없을 때는 도토리묵을 쒀 이웃들을 먹이기도 했다."
-을 쓴 계기는.
"안동장씨 추모 휘호대회가 5회였던 1993년에 소설을 쓰게 됐다. 작품으로 할머니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극적으로 과장하고 싶은 대목도 있었지만 후손으로서 객관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덕분에 글이 딱딱하게 됐다. 좋은 내용만 쓰자면 끝이 없지 않겠는가. 선양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할머니가 전국적 지명도를 얻게 됐다."
-메시지를 던져주려다 오히려 여성단체의 반발만 샀다.
"대판 싸움이 났다. 여성운동 단체들이 당시 나를 상대하느라 아주 조직화되고 활동적이 됐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한국여성운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이프'라는 여성잡지는 순전히 날 겨냥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도 좀 눈치가 없었다. 못할 소리 한 것은 없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막 시작될 때 나선 거다. 약자로 고생하던 여성들이 세상이 좀 나아지면서 이제 눈물 닦고 뭘 좀 해보려는데, 내가 '네 이놈들'하면서 야단을 쳤으니 정면으로 욕먹은 거다."
-에서 제시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작품 제목 그대로다. 할머니가 시대의 덕목을 실천한 것은 매우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현대사회의 시각으로 보면 굴종이고 억압으로 볼 수도 있는 일들을 할머니는 주도적으로 선택해 실천한 것이다. 한 아버지의 딸, 한 남자의 아내, 어머니로서 자발적이지 않았다면 그런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당수 현대 여성들이 빈집증후군을 호소하고 있다. '자발적 선택'을 하지 못한 탓으로 볼 수 있나.
"그렇다. 한번은 방송에서 종업원 수백명을 거느린 중소기업 사장 남편과 명문대 출신 세 아들을 둔 중년여성이 '인생이 허무하다'며 눈물을 쏟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남편과 자식들이 성공한 배경에는 아내, 어머니의 덕이 컸을 테고, 이 여성은 현대의 정부인이자 신사임당인 것이다. 여성으로서 충분히 훌륭한 인생을 살았으면서도, 제대로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다고 호소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선택하지 못한 결과다. 선택이란 말은 강한 자유의지의 표현이다. 여성은 어머니나 아내로서 남성에 비해 잦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 주도적 선택 여부가 여성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우리 사회가 직업여성과 주부를 다르게 보는 것은 현실이다.
"맞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바깥에서 직업 요리사 이름을 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사회인으로 인정하면서도, 집에서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차리면 가치있는 일로 보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활동에 비해 가사노동을 하찮게 보는 시각부터 깨져야 할 일이다. 육아와 가사를 가치 있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성숙한 사회다."
-요즘 정치적 발언이 뜸하다. 정치와는 선을 그었나.
"시간이 없어서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내 코가 석자다. 방송 출연 한번 하려면 한 나절이 날아간다. 나 아니어도 나설 사람 많은데 굳이 나가고 싶지 않다."
-작품 계획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몇 년 남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다급해진다. 후하게 쳐도 10년이다. 나이 70세까지 쓴다고 가정하면 5년도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못쓴 작품을 다 쓰려면 20년은 걸리는데 남은 날이 모자란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래서 변경 12권과 영웅시대에 이어 10권 쓰려던 프롤로그 성격의 작품을 3~5권으로 줄여 쓰고, 여성이야기도 새로 하나 쓰면서 나와 여성들 사이의 문제를 한번 정리하고 싶다. 마지막으로는 최소한의 소설 형식만 차용, 짜라투스트라처럼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모아서 쓰고 싶다. 그 세 가지면 만족하겠는데 10년 안에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약력
한국외대 석좌교수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수상
정부 수여 대한민국 문화상 수상
50개 작품이 16개 언어로 해외 번역 출간
이임태기자 ms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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