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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에게도 기회를] <상> 개인의 좌절, 국가의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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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에게도 기회를] <상> 개인의 좌절, 국가의 손실

입력
2013.08.2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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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붐이 일던 IT벤처 업계에 뛰어든 조모(38)씨는 10년간 해외영업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하루 평균 12시간 일하는 것은 기본,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하고 잦은 유럽 출장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경력을 위해서였다.

결혼 후 2009년 첫 아이를 임신한 그는 해당업계의 경기후퇴와 경영진 교체가 맞물리며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해 회사를 관둬야 했다. 곧 바로 다른 회사를 알아봤지만 면접 담당자는 "좋은 인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사실 얼마 있으면 출산휴가를 가야 할 임산부를 새로 뽑을 회사가 몇이나 될 까.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결국 그 자리는 경력은 부족하지만 남자가 차지했다고 한다.

출산 후 조씨는 영국 연수경험을 살려 TESOL(외국인을 위한 영어교수법), 미국 교과과정, 영어독서지도사 자격증 등을 따며 학원 영어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12월 둘째 아이를 낳고는 그냥 육아에 전념할 수 밖에 없었다. 학원으로 돌아갈까 했으나 적어도 밤 9시까지는 근무해야 하는데 둘째 아이의 어린이 집 시간과 맞추기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결국 영유아 전문 출판업체 영업사원을 선택했다. 월급은 적지만 퇴근시간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경단녀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경단녀'란 출산 육아 등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 이후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력단절여성'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특히 아이 둔 여성들에게 고용시장의 재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출산 육아를 위해 일단 일을 그만뒀다면, 아무리 유능해도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다시 일을 얻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여성고용률은 2001년 47.4%에서 지난해 48.4%로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다. 각 회사마다 입사시험 성적 최상위자들은 모조리 여성이고 '이젠 남성들을 입사에서 배려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구직시장에서 여성들은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용률은 전혀 높아지지 않고 있다. 미국(62.0%)을 비롯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56.7%)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여성고용률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 출산, 육아에 따른 경력단절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연령대별 고용률은 20대 58.7%→30대 53.7%→40대 64.9%→50대 57.5%로 M자형의 패턴을 보이는데, 이같은 수치변동에서 '경단녀'들의 운명을 읽을 수 있다. 즉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취업을 하는 20대에는 고용률이 높지만, 결혼과 출산이 겹치는 30대에는 고용률이 뚝 떨어지는 경력단절현상이 빚어진다.

여성들은 아이가 좀 크면 생활비나 자녀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들게 되는데 40대의 고용률이 상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경력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트계산원 같은 단순업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경단녀'의 취업지원을 위한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 따르면 지난 해 12만2,610명의 여성들이 취업했는데 이중 40%가량이 계약ㆍ일용직이었고, 분야 역시 서비스 사무 회계관리 등 주로 저임금ㆍ단순 직종이었다. 그러다가 50대가 되면 이런 업무에서조차 퇴출당해, 고용률이 다시 하락하는 것이다.

이처럼 M자형 여성 고용률은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나타난다. 특히 고학력 여성들의 경우 출산 후 경력이 완전히 끊어져 평생 전업주부로 남는 경우가 많아, 30세를 기점으로 고용률이 10%포인트 이상 떨어진 후 회복하지 못하는 L자 형태를 띠기도 한다.

육아와 가사를 이유로 경제활동을 포기한 인구는 지난해 417만 명으로 전체 생산가능 여성인구의 21%에 달한다. 이혜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들이 노동시장에 흡수될 경우 전체 여성 고용률은 63%까지 상승하고 여성의 근로소득총액도 60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민무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력단절여성들은 고용이 안정되면서도 시간 조절이 가능한 일자리를 원하는데 관련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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