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휴대폰에 푹 빠졌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의 공판이 매일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문자 중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준수한 외모와 혁명 원로 자제라는 든든한 배경에 한때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경쟁할 정도로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의 유력 후보였던 그가 권력 재편 과정에서 낙마한 뒤 뇌물 수수 등 혐의로 법정에 선 드라마는 중국 인민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외국 특파원의 눈엔 중국의 민낯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먼저 눈길을 끈 건 그의 법정 태도였다. 피고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의를 입지도, 수갑을 차지도 않았다. 다리를 꼬고 앉아 검사들을 노려봤고 법정 증인들을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며 죄인 취조하듯 그들에게 캐물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부인은 '미친 여자'라고 치부했다. 그러면서 부인과 멀어진 것은 자신이 바람을 피운 탓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처럼 '당당한' 자세는 법이 감히 자신을 심판하지 못한다는 것을 웅변하는 듯 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비리는 중국 지도부의 법 의식을 보여줬다. 한 기업가는 보 전 서기 아들의 유학 비용과 비행기 값을 대는 것은 물론 임대 수익으로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프랑스에 호화 별장까지 사줘야 했다. 보 전 서기는 공금 500만위안(약 9억원)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인출, 개인 통장으로 돌렸다. 그의 부인은 심지어 사업상 갈등을 겪은 영국인을 유인해 독살했다. 보 전 서기는 독살 사실을 보고한 공안국장에게 주먹을 날렸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공안국장은 미국 영사관으로 줄행랑을 쳤다.
보 전 서기 사례만으로 중국 공산당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최근 중국을 뒤집어 놓은 또 하나의 사건도 법 위에 군림하는 일부 당 간부의 일그러진 초상을 보여줬다. 허난(河南)성 린저우(林州)시의 경찰 궈정시(郭增喜)는 부모 품에 안긴 생후 7개월 된 아기를 빼앗아 땅 바닥에 팽개치는 엽기적 행각을 벌였다. 아기가 인형 같다면서 진짜 인형인 걸 증명하겠다며 한 짓이었다. 당 간부인 그는 내부 징계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고 민심이 들끓고서야 뒤늦게 당적을 박탈당했다.
그래서 요즘 중국에선 헌정(憲政) 논의가 뜨겁다.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 당이 법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개선, 법치를 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시 주석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는 법치와 민주화를 강조하는 것이 서구 사상에 오염된 것이라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 이들은 중국 '특색'사회주의를 강조할 뿐이다. 중국의 현주소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이후 중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국을 알아야 하고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에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반가운 일이고 다행스런 변화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과 한계를 분명히 알고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국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환상을 갖는 것은 특히 경계해야 한다. 이는 경제 문제뿐 아니라 대북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시장이 될 수 있지만 우리 경제의 최대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60여 년 전 우리에게 총을 겨눴다가 20여년 전엔 북한을 외면하고 우리와 수교했듯 상황이 바뀌면 또다시 돌아설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라다. 국가보다 당이 우선하며 법 위에 당이 있다. 그런 신념에 가득 찬 당 간부가 지배하는 나라다. 얼핏 보기에는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지만 엄연한 사회주의라는 것도 잊기 쉽다.
경극(京劇) 무대에 선 짙은 화장의 배우는 예쁘다. 그러나 실제의 모습은 다를 수 있다. 중국의 화장발뿐 아니라 맨 얼굴을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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