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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8월 26일] 갱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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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8월 26일] 갱년기

입력
2013.08.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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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어느 날 새벽,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아내가 스마트 폰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졸린 목소리로 몇 시냐고 물었더니, 새벽 4시란다. 여태 안 잤느냐는 물음에 자다 깼다고 했다. "그만 자자"고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며칠 후 새벽, 다시 깼다. 어, 아내가 또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안팎의 복잡한 일들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다 잘 될 거야"라는 쿨한 대답. 다시 나는 큰 대자로 뻗었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늦은 밤까지 아내와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가만히 앉아 있는 아내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덥다곤 해도 머리 위에 샤워기를 튼 듯 땀을 흘릴 더위는 아니었다.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아내는 "갱년기인 것 같다"며 "잠을 자면 한 시간마다 깬다"고 했다. 새벽에 스마트 폰을 좋아서 본 게 아니었다. 언제부터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서너 달은 됐단다.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들 셋을 키우던 결혼 초에는 하룻밤에 열 번도 더 깼는데, 지금은 아내가 한 시간마다 깨는데도 전혀 몰랐다니, 정말 미안했다. 큰 아들이 만 2살 때 쌍둥이 아들이 태어나 우리 부부의 육아는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낮에는 천사 같던 아이들이 밤이 되면 돌변했다. 한 아이가 배가 고파 깨면 다른 두 아이도 덩달아 깨어 울었다. 기자 초년 시절이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던 내 눈도 빨갰고, 배웅하는 아내 눈도 빨갰다. 그래도 힘들지 않았다.

▲ 미안한 마음에 갱년기 증상이 호르몬 불균형의 결과인 만큼 적당한 운동과 약물 치료면 낫는다는 뻔한 얘기에, 좋은 음식과 피할 게 뭐라는 흔한 정보를 찾아 일러주었다. 다 아는 얘기겠지만 아내는 열심히 들어줬다. 갱년기를 심하게 앓는 이들은 우울증까지 겪는다는데, 아는 얘기를 새삼스럽게 주고받는 게 우리 부부의 대처법인 셈이다. 그래도 혼자 푹 자는 건 미안하다. 한 시간은 아니라도 두세 시간마다 깨어서 함께 해야 하는데, 눈 뜨면 또 아침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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