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목적의 한약에 한해 건강보험 혜택을 주려던 계획이 한의사들의 집안싸움 때문에 무산위기다.
정부는 올해 10월부터 3년 동안 여성ㆍ노인 질환 치료용 첩약(貼藥)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하기로 하고 건보재정에서 매년 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행을 한달 여 앞두고도 대상 질병이나 연령대 등 구제적인 적용조건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한의사 외에 한약을 조제할 수 있는 한약사, 한약조제약사(한약조제 자격이 있는 양약사)의 사업 참여를 놓고 한의사단체 내부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이해단체간 협의가 있어야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내걸었다.
4월 출범한 현 대한한의사협회 집행부는 한약사, 한약조제약사들은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참여시키기로 한 첩약급여화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김태호 한의협 홍보이사는"병을 진단할 수 없는 비의료인들에게 첩약을 조제하도록 한다면 오히려 의료시장의 혼돈만 가중될 것"이라며 "이번 사업은 2,000억원을 3개 직능이 나눠가지도록 한 선심성 사업에 불과해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의학계에 따르면 현재 한방첩약을 조제하는 비율은 한의사 80%, 한약사 5%, 한약조제약사 2.5% 정도다.
반면 한약사, 한약조제약사를 논의에 참여시키더라도 우선 한방첩약을 급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지난달 14일 열린 한의협 대의원대회에서는 첩약급여화 방안을 검토하자는 의견이 다수여서 TF팀이 꾸려졌고, 이를 지지하는 한의사 10여명이 1일부터 한의협 로비에 텐트를 치고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장동민 TF팀 홍보위원은 "돈이 없어서 첩약을 지어 먹지 못하는 환자를 생각해 당장이라도 시범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며 "한방첩약이 급여화되면 불신받고 있는 한약의 안전성을 국가에서 공인받게 되는 등 한의학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의협 집행부는 TF팀 결성을 구성한 지난달 대의원대회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다음달 8일 별도로 총회를 열겠다는 계획을 발표, 내홍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의사단체 내부의 집안싸움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3년간 6,000억원이나 투입되는 보장성 확대계획을 발표해놓고 "내부 당사자끼리 해결하라"며 중재에 소극적인 복지부도 문제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환자를 위해 보장성을 강화한다고 발표했으면 이유야 어쨌든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며 "누가 옳은 주장을 하는지 판단도 안 하는 복지부는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숙영 복지부 한의약정책관은 "세계 의학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발전시켜야 할 것이 많은데 한의계가 소모적인 논쟁에 묻혀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