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법 인권은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권리계층의 현실을 통해 드러난다. 법은 평등하고 개인 역시 평등하다지만, 현실에서 법치의 당위는 무기력할 때가 많다. 어떤 법의 권능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비용을 들여 사야 하고, 비용의 크기가 누리게 될 법의 권능과 깊은 상관관계를 지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돈 대신 힘이 개입할 때도 있다. 이른 바 '정의의 편중'이다.
그 틈새에 뛰어들어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이들이 공익변호사다. 그들은 난민 장애인 등 소수자를 위해 변론하고 부당한 법과 제도에 맞서 싸운다. 공익변호사는 일체의 영리 활동을 안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인권변호사와 다르고, 정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국선변호사와도 다르다. 그래서 공익변호사의 저변은 그 사회의 법치의 품격과 인권 수준을 가늠케 하는 설득력 있는 지표가 된다.
국내 공익변호사는 최근 2년 새 2배 가량 늘었다. 그래서 약 20명이다. 이들은 주로 사적 후원으로 자신의 활동과 가족의 생계를 도모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데모 한번 못하고 공부만 했는데 난민들은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었더라. 그들을 돕고 싶었다." "답답한 판검사나 돈을 좇아야 하는 사선 변호사가 싫었다."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자신들 말고도 많다고 했다.
5년차 변호사 D씨는 얼마 전 동료 변호사 3명과 공익 로펌을 설립키로 했다. 운영경비는 후원과 모금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난관에 부딪쳤다. "현행 변호사법상 비영리 로펌은 허용되지 않더군요. 당연히 기부금 공제도, 세금 혜택도 없죠. "D씨의 사례는 2012년 7월 법무부가 주관한 변호사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문제점으로 제기됐으나, 법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법만이 아니다. 정부도, 자치단체도, 국내 로스쿨 어디도 공익변호사 지원 시스템을 갖춘 곳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일손이 필요하고 일하겠다는 변호사도 있는데 월 200만원이면 되는 급여를 줄 형편이 안 돼 신규채용을 못하는 곳도 있다.
미국 일본 등의 사정은 우리와 판이하게 달랐다. 다들 정부나 변호사협회, 로펌 등이 별도 기금 등을 통해 공익변호사를 지원하고 있고, 심지어 기금이 남아도는 곳도 있었다. 미국의 경우 상당수 로스쿨이 공익변호사에게 학비를 탕감해주는데, 공익변호사 배출 규모가 학교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물론, 법이 인권 향상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법치의 당위가 공감대로 깔려 있을 것이다.
한 공익변호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우리라고 특별히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좋은 일 하시는 분도 많은데…."과연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지원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지원이라는 점은 틀림 없을 것이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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