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문제가 경색 정국을 풀 최대 난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들어가면서 내건 ▦국정원 개혁 ▦국정원 의혹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등 4개 요구사항 중 여권이 대통령 사과요구에 대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명박 정부 때 일인데 왜 대통령이 사과해야 하느냐"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이런 입장 차이로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인식 차이를 좁힐 묘수는 없는 것일까.
민주당이 박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근거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물론 경찰의 축소ㆍ은폐 수사 의혹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는 게 핵심이다. 적어도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대목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국정원과 경찰의 국기문란 행위에 권영세 주중대사와 김무성 의원 등 지난해 대선 캠프의 핵심 인사들의 연루 의혹도 제기된 만큼 대통령이 사과를 통해 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남재준 국정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은 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23일 "박 대통령은 이제 침묵을 깨고 말씀을 해야 한다"며 대통령 사과를 거듭 촉구했다.
민주당은 다만 대통령의 사과나 입장 표명의 수위와 형식에 대해서는 다소 유연한 접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웅래 당 대표 비서실장은 "사과든 유감이든 일단 입장 표명을 하게 되면 책임자에 대한 처리나 국정원 개혁 등의 다음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이런 접근은 요지부동인 청와대를 어떻게든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요구 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민주당 접근법에 따르면 3자 회동으로 나가는 마지막 관문은 사과 내지는 유감 등 입장 표명의 수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사과는 대선 부정 인정과 정통성 시비로 확산될 수 있다는 민감성 때문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일부에서도 "검찰이 밝혀낸 공소 사실로만 보면 청와대가 사과까지 하기에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수위 조절론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국정의 총괄 책임자인 만큼 대국민 사과는 아니라도 유감 정도의 입장 표명을 통해 정국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이 국가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한 입장 표명을 통해 야당과 대화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대치 정국의 장기화가 박 대통령 리더십에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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