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단체 '아시아의 창' 상근변호사 이은혜(31) 씨의 월급은 회사가 아닌 법조계 동료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사법연수원 42기 동기들이 매달 자발적으로 1만~10만원씩 내 공익전담변호사 후원기금 '낭만펀드'를 만들었고, 이 변호사가 그 펀드의 수혜자로 뽑힌 것이다. 펀드 덕에 이씨는, 박봉이나마 생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시민단체로서도 부담 없이 변호사를 고용했다. 변호사 공익지원의 불씨를 지핀 건 2011년, 41기 사법연수원생들이다. 그들은 '감성펀드'를 만들었고, 올해 43기생은 '파랑기금'이란 이름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세 기금으로 다섯 명의 공익전담변호사가 탄생했다.
#지난 3월 2일 법무법인 '광장'이 '2012년 공익활동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총 164명의 소속 변호사가 총 3,437시간의 공익활동을 했다. 1인 평균 20.9시간. 서울 변호사협회가 소속 변호사들에게 의무화한 '연간 20시간 공익활동' 기준을 간신히 넘긴 셈이다.(그 '의무'란 것도 실은 변호사들의 자발적인 보고에 기반한 의무다.) 활동 내용도 법률상담 등 전문분야 서비스가 아니라 보육원 방문, 연탄 나눔 등 일회성 이벤트 위주였다. 그나마 국내 로펌 가운데 공익활동보고서라도 내는 곳은 광장과 법무법인 태평양, 단 두 곳에 불과하다.
공익전담변호사에 대한 사회적 수요와 예비 법조인들의 관심은 늘어가는데 공적인 지원 스템은 사실상 없다. 오직 사적인 열정과 선의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이 줄곧 닮고자 애달아온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사정은 우리와 판이하다. 그들은 정부와 변호사협회, 로펌 차원에서 공익전담변호사를 돕기 위한 체계적 시스템을 일찌감치 마련해두고 있다. 그 저변도 부러울 만치 넓다. 공익전담변호사에 대한 지원 수준이 그 사회의 인권에 대한 관심도를 보여주는 지표인지도 모른다.
일본 변호사협회는 '해바라기(히마와리) 기금'을 조성해 공익전담변호사를 후원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1996년 일본 변호사협회는 마을에 변호사가 단 한 명도 없는 '무변촌(無辯村)' 문제가 국민들의 사법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단, 변호사들로부터 매달 2,000엔씩 걷어 무변촌 공익전담변호사 파견 사업을 진행해 왔다. 현재 일본에서 변호사가 없는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미국 변호사들의 노력도 인상적이다. 미국은 변호사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변호하는 프로보노(Pro Bono Publicoㆍ공익을 위하여)운동의 원조 국가다. 1993년 미국 정부가 예산을 이유로 경제적 약자를 위한 법률구조기금을 대폭 삭감하자 미국 변호사협회(ABAㆍAmerican Bar Association)가 나서서 변호사들에게 연 50시간의 공익활동을 의무화했다. 이어 1996년 로펌과 변협의 후원 아래 비영리 단체 '프로보노 인스티튜트 (PBIㆍPro Bono Institute)'를 설립하고 공익전담변호사들과 로펌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관리 감독하도록 했다. 미국 변호사들에게 공익활동은 말 그대로 '의무'다.
영국은 정부의 막대한 후원 속에 민간 법률구조 조직이 꽃피었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법률구조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영국 최대의 민간 법률구조단체 '시민자문(Citizen Advice)'은 영국 전역 496곳에 사무소를 두고 3,200여 곳에서 2만973명의 자원봉사자와 5,617명의 유급직원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법률적 조력을 제공한다. 약 2,400억원에 이르는 예산은 정부와 지역정부로부터 충당 받는다.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재왕(35)변호사는 "내년 초까지 서울대 로스쿨 1기 동료들이 조성한 기금으로 활동비(월급)를 지급받는다"며 "그 이후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는데,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만 그런 게 아니라 공익전담변호사의 활동 기반은 너나없이 불안하다. 영리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 차원의 후원은 대상자가 한정돼 있고 지속성도 떨어진다.
반면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로스쿨이 공익변호사의 로스쿨 학비를 탕감해주고 있다. 로펌은 공익전담변호사의 임금을 지원하는 '공익변호사 임금제도'를 시행한다. 공익변호사 배출이 로스쿨과 로펌의 평판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 보니 후원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 '공감'의 황필규(45) 변호사는 "지난해 하버드 로스쿨에서 공익펀드를 조성했는데 아직 후원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법은 공익법무법인을 세우는 것조차 막고 있다. 현행 변호사법은 영리 목적의 법무법인만 인정한다. '공감'과 같은 비영리 법률사무소는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으로 등록해야 한다. 법무법인이 아니다 보니 공익전담변호사들은 별도로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개설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는다. 법무법인들이 누리는 세제 혜택도 당연히 받지 못한다.
컨트롤타워(중개자)의 부재도 아쉬운 점이다. '동천'의 양동수(37) 변호사는 "공익활동을 하는 변호사가 일일이 수요처를 찾고, 공익소송을 위한 이?발굴에도 신경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프로보노 인스티튜트(PBI)가 ▲로펌의 공익활동 계획 수립 ▲시민단체와 공익전담변호사 연결 ▲공익전담변호사 교육 및 양성을 담당한다.
정지용기자 cdrag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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