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할8푼5리(7타수 2안타)'
박근혜 정부의 공공주택 정책인 '행복주택'의 현재 타율이다. 철도부지 위에 집을 짓는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주목 받았던 대선 공약치곤 성적이 초라하다. 정권 초기부터 진동 및 소음 등 기술적 한계와 비용문제가 거듭 불거지자 '20만호→연내 1만호 우선 건설, 철도부지→유휴부지로 확대' 등으로 계속 후퇴했다.
하지만 정작 넘지 못할 벽은 돈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정부가 5월 20일 7개 시범지구를 발표하자마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일각에선 님비(NIMBYㆍ혐오시설 유치 거부)라고도 했지만, 지역 특성과 주민 의사를 미리 살피지 못한 탁상행정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22일 2개(서울 가좌ㆍ오류) 지구만 우선 지정하고, 5곳은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엄마와 아이가 행복한 복합주거타운'(고잔), '주민들이 납득할 합리적 대안'(서울 목동) '교통문제 해결방안 마련해 주민 설득'(잠실, 송파) 등의 구체적 보완사항을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 설명은 오히려 끓어오르던 지역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23일 보류된 5곳의 지방자치단체는 일제히 보완대책에도 거세게 반발했다. "협의는커녕 일방적인 설명회만 2번 했다. 7만명 넘게 반대 서명했다"(목동), "이미 동네 학교는 과밀학급이라 엄마와 아이가 행복할 상황 아니다"(고잔), "제2롯데월드 완공되면 교통지옥이다. 공무원들이 여기 실제 와본 적은 있는가"(잠실, 송파), "국회의원 포함한 모든 지역 정치인이 공원 만들기로 한 자리"(공릉) 등 불신과 분노가 가득했다.
해당 부처의 상황인식은 여전히 안이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적 절차를 지켜 선정했고, 섣불리 계획을 흘리면 부동산시장을 교란할 수 있어 사전설득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 좋은 상황에서 법 절차만 지키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니 좋은 취지로 시작한 행복주택 자체가 흔들리게 됐다"고 비판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사업 성공을 위해서는 도시계획 안에서 주민들과의 교감과 협의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탓에 가뜩이나 미진한 공공주택 정책은 다시 표류 위기에 놓였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대비 5% 수준에 불과한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낮은 공공주택 비율 때문에 치솟는 전ㆍ월셋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은 아무 대책 없이 길거리로 쫓겨나는 상황이다.
2002년 전남 무안군에선 9개 마을이 다들 싫다는 쓰레기소각장 유치경쟁을 벌였다. 사업 공모에서 평가, 선정까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핌피(PIMFYㆍ혐오시설 유치 희망)의 첫 사례로 기록(본보 2002년 12월 4일 23면)됐다. 강산이 변해도 여전히 핌피 사례를 찾아오라는 중학생들 숙제의 답으로 무안이 거론되는 걸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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