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저물 무렵 한 시간 남짓 걸었다. 팔다리를 휘휘 저으며 심심풀이로 들으려고 팟캐스트 방송을 골랐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이 눈에 띄었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1992년 11월 2일 첫 방송부터 95년까지 그리고 8년을 건너뛰어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애청자의 밤잠을 앗아간 방송이다.
오랜만에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나 들어볼까 하고 구독목록에 넣었다. 패널로 나온 정성일 평론가와 박찬욱 감독의 목소리도 그리웠다. 그러다가 어느새 이 방송을 매일 한 회씩 오롯이 듣기 위해 산책을 나서게 되었다. 중독이었다.
먼저 '뜨거움'이 나를 휘감았다. 등장하는 목소리가 전부 진지하고 순수했다. 영화가 이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거듭 질문하며, 애청자들도 이 물음에 동참하도록 권하고 때론 강요했다. 거침없는 비판과 따뜻한 상찬, 뻔뻔한 호기심과 '영화가 수준 이하라는 건 우리 사회가 수준 이하라는 겁니다'라는 선언이 불꽃처럼 휘날렸다.
달콤한 추억 대신 서늘한 기시감을 선사하는 대목이 잇달았다. 2003년 10월 22일 정은임은 이런 이야기로 방송을 시작한다.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싸우다가 홀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고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노동자 김주익의 죽음이 거기 있었다. 김진숙과 희망버스 그리고 지금의 몇몇 싸움은 10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었다.
94년 10월 5일, 정성일이 2년 동안의 패널을 마치며 들려준 긴 고백도 내 서툰 산책을 멈추게 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관통하면서 그를 매혹시킨 영화들이 차례차례 등장했다. 아마추어 영화광에서 영화평론가로, 훗날 영화감독으로 나아가는 명민한 영혼이 그 속에서 반짝였다. 이 아름다운 회고는 옳고 그름을 가르고 걸작과 졸작을 지적하는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다. 영화 '시네마 천국'을 싫어하는 그답게, 영화만 좋으면 만사형통이란 입장을 최악으로 꼽았다.
기억할 만한 흐느낌도 있었다. 10월의 마지막 밤, 리버 피닉스의 때 이른 죽음이 떠오를 때면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경쾌한 곡들을 골라 틀기도 했다. 그러나 곧 웃음은 떨리는 목소리에 이끌려 슬픔에 빠졌다. '허공에의 질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도망자인 가족과 이별하는 리버 피닉스는 우리들의 초상이었다.
방송은 끝났고 정은임은 불의의 사고로 2004년 8월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았다. 영화를 보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영화음악을 듣고, 또 가끔은 이 방송 덕분에 알게 된 키에슬로프스키 감독과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작품들을 꺼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정말 몰랐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이 추억의 매개가 아니라 20년 혹은 10년의 시간 차이를 훌쩍 뛰어넘어 지금 여기의 나를 흔들며 찌를 줄을.
인생이란 내면의 소리를 만드는 나날이 아닐까. 세상의 소리는 많지만 내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소리는 지극히 적다. 어떤 소리는 매일 찾아와도 스치듯 사라지고 어떤 소리는 일생에 단 한 번 닿더라도 심신을 온통 울려댄 후 내 안에 머무른다. 그렇게 바뀐 내면의 소리는 또 언젠가 바깥으로 흘러나가 타인의 영혼을 울리고 그 내면에 둥지를 튼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이 신비로운 안과 밖의 공명(共鳴)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당신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오면 걸음을 멈춘 후 이 소리가 하필 당신을 감동시키는 이유를 따져보아야 한다. 정은임은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라는 트뤼포 감독의 명언을 자주 인용했다. 오래 전 즐긴 라디오 방송을 팟캐스트로 다시 들은 덕분에 내면의 소리를 하나 더 찾았다. 살은 빠지지 않고 귀만 예민해진 여름 황혼의 일이다.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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