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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어떻게 벌까" 묻기 전에 '돈이 무엇인지'를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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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어떻게 벌까" 묻기 전에 '돈이 무엇인지'를 알아라

입력
2013.08.2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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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공무원 7명 화폐의 어제·오늘·내일 통찰 "돈의 본질은 신뢰·절제" 메시지동양이 지폐유통 앞선 까닭… 달러의 기축통화 유지 배경경제위기 관련 금융의 두 얼굴… 흥미 있고 민감한 질문 던져

지갑 안 깊숙이 접힌 지폐들, 바지 주머니와 책상 서랍 안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동전들. 돈이라는 이름으로 돌고 돌며 세상을 지배하는 화폐의 가장 익숙한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화폐의 얼굴이 "실체와 가깝다" 단언할 수 있을까. 어쩌면 손으로 움켜쥐고 사과 상자에 가득 채울 수 있는 냄새 물씬한 돈뭉치보다 은행직원의 타이핑이 창조한 사이버, 혹은 그 어느 공간 너머에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동그라미 몇 개야말로 진짜 돈이 아닐까. '흐르고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매우 동서화합적인 단어, 돈과 화폐(Currency). 세상만사 다 제치고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돈 이야기이지만 경제학개론서라도 펼친 듯 난해한 용어들 때문에 고개를 떨구고 책장을 덮었던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은 그럴싸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일곱 개 키워드로 읽는 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란 부제를 달고 나온 책은 돈을 부동의 회색 뭉치가 아닌 살아 펄떡거리는 생명체로 읽어내는 전문가 집단의 오랜 자체 학습 결과물이다. 세계 금융위기 한파가 몰아쳤던 2008년, 우연히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에서 일한 인연을 나눈 7명의 공무원은 다시 한 번 2012년을 전후해 파견근무, 유학 등 이유로 영국 런던에서 해후했다. 당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사로 일하던 송인창씨 등 7명은 화폐에 관해 한 가지씩 주제를 맡아 정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근ㆍ현대 화폐권력의 상징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을 바라보며 시작된 이들 고민은 어른이 되면서 사라졌던 '돈은 무엇인가'란 근원적인 질문이 고개를 들면서부터다. 대부분 경제서들은 '돈을 어떻게 벌까''돈을 어떻게 쓸까'라는 매우 어른스러운 물음에 대한 답을 들고 나온다. 반면, 이들은 '화폐의 본질은 신뢰와 절제'라는 메시지를 일곱 개 키워드와 함께 섞어 돈의 민낯을 독자들이 똑똑히 볼 수 있도록 이끈다.

저자 일곱 명이 나눠 쓴 일곱 키워드는 화폐의 역사, 지폐, 금융의 명암, 영란은행 이야기, 기축통화의 각축, 화폐의 기본, 케인스와 화폐정책, 화폐를 다스리는 지혜 등이다. 책은 화폐의 역사를 다룬 첫 장에선 인류가 청동에 이어 금과 은 등 귀금속을 돈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 단순히 유통의 편리함이란 물질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지배층의 귀금속 집착증 때문이라 설명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절 금은 순도가 높은 돈은 보유하고, 대신 너도나도 금은을 칼로 긁어내 가치가 떨어진 돈을 유통하면서 나온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토마스 그레셤의 표현도 소개한다. 지폐 이야기를 다룬 2장에선 중세 금세공인들이 발행했던 일종의 약속어음이 시발이 되어 지폐가 탄생했다는 얘기, 지폐유통이 유독 동양에서 앞섰던 이유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책은 마르코 폴로가 에서 몽골 지도자 쿠빌라이 칸이 모든 거래를 지폐로 이뤄지게 하는 것을 보고 "마술처럼 생각했다"고 말했던 표현을 들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왕권의 파워가 제국을 이끌던 동양의 '전능한 존재'에 미치지 못했던 서양에선 왕이 실제 가치가 없는 종이에 숫자를 적어놓고 사용을 강제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서양의 지폐 유통은 동양보다 수백 년이 늦었고 그나마 정부발행이 아닌 민간은행 발행권 위주였다고 책은 밝힌다. 저자들은 금융의 명암을 얘기한 장에선 과연 금융 발전이 경제 성장을 이끌었는지, 금융은 경제 위기의 주범인지, 불평등의 원인이 되었는지 등 민감한 화두들을 던진다.

기축 통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5장에 이르러선 어떻게 세계 국내총생산의 20%에 불과한 미국의 달러화가 부동의 기축 통화 지위를 이어가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다룬다. 저자는 단지 달러화의 유동성이 풍부하고 필요 시 다른 통화로 교환이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해석을 이렇게 보충한다. 미국이 과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경제기반이 무너지자 결과적으로 국제자금 공급량의 85%가량을 담당하게 됐다. 이때 굳어진 달러 사용 관습이 관성적으로 지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책에 따르면 관습의 결과는 미국에 엄청난 혜택으로 돌아왔다. 숨겨진 혜택의 예로 책은 일종의 주조 차익(Seigniorageㆍ정부가 화폐 주조시 얻는 수수료)을 통한 이익을 든다.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이유로 100달러 지폐 인쇄비용이 고작 몇 펜스에 불과한데도 외국인들은 이 지폐를 손에 넣기 위해 100달러 값어치의 상품과 용역을 미국인에 제공하는 것이다. 더구나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은 금융 위기 주범이든지 과도한 대외 채무를 지든지 상관없이 우리가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겪었던 유동성 위기에 처할 위험이 없다. 이래저래 영국 파운드화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기축통화의 지위를 미국?넉넉히 누리고 있다.

책은 점증적으로 독자의 수준을 페이지를 더해가며 끌어 올린다. 가벼운 '산책'을 권유하며 화폐의 역사를 풀어가던 저자들은 금융의 주홍글씨를 얘기하고 케인스를 말하며 어느새 독자로 하여금 생각의 운동화 끈을 동여매게 한다. '~이야기'로 시작하는 여타 책들과 달리 독자의 주력(走力)을 테스트하는 난코스가 눈에 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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