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는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에게 여러모로 남다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벼랑 위의 포뇨’에 이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가 ‘이웃집 토토로’ 개봉 25주년을 맞아 만든 작품이라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이웃집 토토로’는 세계 애니메이션의 거산이 된 지브리의 오늘을 있게 한 작품이다. 지브리는 1985년 미야자키가 당대 최고 애니메이션 감독 중 한명인 다카하다 이사오(高畑勲)와 의기투합해 설립했다. 다카하다 감독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1974)와 ‘추억은 방울방울’(1991),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 등으로 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지브리는 1988년 ‘이웃집 토토로’와 다카하다 감독의 ‘반딧불의 묘’를 함께 개봉시키면서 애니메이션 명가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했다. 일본 전설 속 도토리 요정을 소재로 삼은 ‘이웃집 토토로’는 2001년 국내 정식 개봉되기 전부터 불법 유통된 복제 비디오테이프로 국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반면 ‘반딧불의 묘’는 반전 메시지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반감 어린 평가도 적지 않게 받았다. 어린 여동생과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주인공 소년이 일본제국 해군 장교인 아버지와의 즐거운 한때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엿보인다는 비판이 따랐다. 가해자 일본의 책임보다 피해자 일본인의 슬픔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지브리는 ‘바람이 분다’에 이어 다카하다 감독의 신작 ‘카구야 공주 이야기’를 11월 일본 개봉 예정이다. 지브리가 두 간판 감독의 영화를 한 해에 선보이기는 1988년 이후 25년 만이다. 미야자키 감독이 전쟁에 휘말린 일본인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카하다 감독은 일본의 전설을 밑그림으로 손가락 크기만한 대나무 공주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채색한다. 우연일까, 의도한 것일까. 25년 전 두 감독이 각자 다뤘던 엇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서로 바꾼 모양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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