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키호테의 무엇이 소설가 서영은을 붙들었을까. 작가는 수년 전 스페인 살라망카에서 높이 창을 쳐든 돈 키호테의 조각상을 본 순간부터 무모하고도 순수한 그 의지적 열정에 매료되었다고 고백한다. 그 계기로 45개국 160여 낯선 도시를 배회하던 발걸음을 스페인에서도 가장 척박한 황야인 돈 키호테의 무대 라만차로 옮긴다. 마드리드에서 시작한 여행은 돈 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기념관이 있는 알칼라 데 에나레스로, 콘수에그라의 풍차, 몬테시노스 동굴, 세르반테스가 구금돼 있던 아르가마시야의 감옥으로 이어지는데 한달 쯤 차를 가지고 직접 돌았다.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허공으로 창을 겨누며 돌진해 마침내 부서진 무모한 인물은 독실한 작가에게 또다른 종교적 확신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신앙인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와 작가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고 했다. 400년 세월 동안 열정의 상징으로 그릇된 이상주의의 화신으로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되어 온 돈 키호테가 생겨난 세상은 한발한발 자기가 옮겨야만 이동이 가능한 직접 체험의 시대였다. "돈 키호테야 말로 삶에 천착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는 작가는 남이 만든 정보를 자기가 만든 걸로 착각하는, 스마트폰이 암전됐을 경우 우왕좌왕하는 아무것도 못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돈 키호테는 삶의 지평을 넓히고 진짜 자기의 것을 찾으라고 조언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라만차 지역을 샅샅이 훑은 여행 에세이집이지만, 오로지 돈 키호테에 천착한 여로는 실제의 어떤 길이라기보다는 영적 순례의 의미가 강하다. 돈키호테의 열정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과 그에 순응하는 삶의 태도가 곳곳에 묻어난다. 작가는 라만차 지역의 숱한 돈 키호테 조형물들을 직접 찍어 첨부해 놓았는데, 각도에 따라 여러 컷을 중복되게 실은 것 역시 그 의미를 다각도로 곱씹어보라는 주문이다.
황량한 벌판 앞에서 창을 든 돈키호테가 돌진하는 방향은 이미 세상이 아니다. 세상 너머의 본질적 불명의 가치를 향해서다. 때문에 책의 메시지 또한 힐링을 주제로 한 여느 여행 에세이집과 다르게 힘차다.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저 창이 나를 겨누고 있구나, 심장을 찔리더라도 한번 날자'하는 의지를 심어줬으면 한다는 게 그것이다. 9월 케냐 오지로 떠난다는 작가는 지난해 여름 세상을 떠난 한국인 선교사의 자취를 돌아 볼 계획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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