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맛은 차갑지만 폭신하고 부드러운 이중성을 가진 아이스크림은 혀에 진하게 감기면서 깊은 여운을 주고 어느새 녹아 사라져버리는 마술 같은 음식이다. '어린시절 나는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은 밤새 잠을 자지 않거나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다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는 고백은 비단 빌 브라이슨만이 품은 생각은 아닐 것이다. 는 휴머니스트의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연작 중 한편으로, 미국 음식 칼럼니스트가 썼다. 책은 차가운 얼음의 발견부터 현대식 아이스크림으로 넘어오기까지 3,000년 역사를 흥미롭게 조망한다.
냉장 기술이 발달한 근대 이후에야 아이스크림이 등장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 이미 얼음 저장고가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우유가 든 얼음과자를 처음 즐긴 건 중국 당나라(618~907) 황제들이었는데 기원전 1,100년께 이미 얼음을 채취해 저장하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고대 로마나 그리스에서도 천연얼음에 와인이나 꿀, 우유를 넣어 디저트로 먹었는데 인공 얼음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 부유층만 즐길 수 있어 당시에는 사치품 성격이 짙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젤라토, 프랑스에서는 글라스, 러시아에서는 모로제노예라고 부르는 현대식 아이스크림은 17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얼음 또는 눈에 설탕과 과일즙, 우유를 섞어 얼린 '소르베토'가 효시로 에스파냐 총독 공관의 집사였던 안토니오 라티니에 의해 만들어졌다. 1843년 미국인 낸시 존슨이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발명하고 1870년 독일 과학자 린데가 냉동기술을 발명한 덕분에 마침내 공장제 생산과 대량판매가 이뤄졌고, 이후 프랑스, 영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마침내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이 비교적 소규모 구멍가게 수준이었다면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소다파운틴이라는 특별한 가게가 유행하며 훗날 아이스크림 공장까지 설립하는 등 규모를 키운다. 배스킨라빈스, 하겐다즈의 태동 일화를 소개하며 미국 아이스크림 역사를 비교적 자세하게 짚고 있다. 진한 맛의 이탈리아 젤라토, 쫀득한 터키의 살레피 돈두르마, 파키스탄의 쿨피 등 사진을 곁들인 각국의 고유한 아이스크림 역사를 읽다보면 당연히 맛보고 싶은 충동도 강렬해진다.
책 말미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가 쓴 '한국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덧붙여 책에는 빠진 한국사 부분을 보충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미 신라시대부터 얼음저장고가 있었다는 사실과 1960년대 삼강하드의 인기, 1986년 8월 서울 명동에 개업한 배스킨라빈스 제1호점의 출현 이후 등을 상세히 기술했다. 현재의 아이스크림이 알려진 것은 일본을 통해서였는데, 식민지 시기 한글학회에서 발간한 1934년 6월 발간한 '한글'에 '긴급 동의'를 구하며 '아이수쿠리'는 영어로 된 아이스크림을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말이므로 정정해야 한다는 글 등을 짚은 것도 흥미롭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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