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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바둑, 상비군 '히든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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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바둑, 상비군 '히든 카드'

입력
2013.08.2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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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부터 바둑종목 국가대표 상비군이 본격 출범, 상시 훈련 체제에 돌입한다. 23일 한국기원에 따르면 박정환, 김지석 등 상위 랭커들과 신진서, 신민준, 최정, 오유진 등 유망 신예, 여자선수들로 구성된 40명 규모의 국가대표 상비군을 이달 말까지 발족시켜 다음 달 초부터 본격 훈련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 동안 아시안게임 등에 대비해 한시적으로 대표팀을 구성, 운영한 적은 있으나 상설기구로 국가대표 상비군을 만들어 본격 훈련을 실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한국 바둑이 맞고 있는 총체적인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련된 긴급 처방이다. 올 들어 한국 바둑은 각종 세계대회서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LG배, 응씨배, 춘란배 등 주요 세계대회서 모두 중국에 우승컵을 내줬고, 특히 지난 6월 LG배서는 한국 선수가 8강에 단 한 명도 오르지 못했다. 한국이 세계대회에 출전한 지 16년 만에, 그것도 안방에서 열린 한국 주최 대회서 처음 겪은 대참사다. 그뿐 아니다. 불과 두 달 후인 이달 초 베이징에서 벌어진 몽백합배서도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중국 선수들이 8강을 싹쓸이 한 것이다.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88년 후지쓰배 이후 25년 만에 거둔 쾌거"다.

그러지 않아도 수 년 전부터 중국의 나이 어린 신예 강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한국 바둑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하자 뭔가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그 첫 번째 방안으로 상비군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바둑계에서 공식적으로 국가대표팀을 구성, 운영한 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가 처음이다. 사상 최초로 바둑 선수들이 태릉 선수촌에 입소해 훈련을 받는 등 당시 바둑계로서는 획기적인 시도로 결국 아시안게임서 전 종목 금메달 석권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그때 대표팀 총감독을 맡았던 이가 바로 양재호 현 한국기원 사무총장이다. 이후 한국기원에서는 최근까지 정상급 기사와 유망 신예, 여자기사들을 대상으로 월 2회 정도 연구회를 운영해 왔지만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하다 보니 운영이 느슨해지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반성이 있어 이를 상비군으로 개편, 운영을 강화키로 한 것이다.

새로운 국가대표 상비군 운영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 성적에 따른 승강급제도를 도입했다는 것. 랭킹 순으로 10명씩 4개조로 나눠 2~3개월마다 조별 리그를 실시해 상위 3명은 윗조로 올라가고 하위 3명은 아래조로 내려간다. 과거 연구생리그에서 적용하던 방식으로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 훈련 성과를 높이려는 것이다. 특히 조별 리그전은 최근 국내기전이 대부분 속기 위주여서 전체적인 기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에 따라 제한시간을 2시간으로 늘렸다. 명인전, 삼성화재배와 같은 방식이다.

이밖에 그룹별 연구회도 주 2, 3회 이상 실시할 방침이다. 특히 10대 신예와 여자들은 연구회를 통한 훈련이 기력 향상에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비군 선발은 먼저 기사들의 신청을 받았는데 무려 82명이 참가신청서를 냈다. 군 복무 중이거나 학업이나 취업 등의 이유로 빠진 사람을 제외하면 랭킹 100위 안에서 거의 전원이 신청한 셈이다. 상위 랭커 중에는 이세돌(3위)과 최철한(4위), 이창호(17위)가 개인적인 사유로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중에서 박정환(20) 김지석(24) 박영훈(28) 조한승(31) 강동윤(24) 이영구(26) 김승재(21) 목진석(33) 나현(18) 이지현(21) 홍성지(26) 등 11명이 랭킹 순으로 우선 선발됐고, 이동훈(14) 변상일(15) 신민준(14) 신진서(13) 김진휘(17) 한승주(17) 설현준(14) 최영찬(14) 강승민(19) 황재연(18)과 최정(17) 오정아(20) 김채영(17) 김수진(26) 김신영(22) 오유진(15) 마리야(18) 강다정(22) 박태희(19)가 각각 신예와 여자 편성 규정에 따라 선발됐다. 원래 각 그룹 별로 10명씩 뽑기로 했으나 여자기사들은 학업이나 취업, 가사 등 개인사정으로 정기적인 훈련 참가가 어려워 신청자가 9명밖에 안 돼 대신 상위 랭커 그룹에서 한 명을 더 뽑았고, 신예는 1996년 이후 출생자를 우선 선발하고 나머지 강승민과 황재연은 랭킹을 감안해 코칭스태프에서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나머지 일반신청자 52명을 대상으로 26일부터 28일까지 선발전을 치러 10명을 추가 선발한다. 상비군 40명의 명단이 확정되면 다시 이들을 랭킹 순으로 4개조로 나눠 9월초부터 조별 리그전과 연구회 등 본격 훈련에 들어갈 예정이다.

상비군 코칭스태프는 실내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이홍렬 9단이 총감독, 안조영 9단이 감독, 박승철 7단이 코치를 맡았다. 상비군 소속선수들에게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훈련비가 지급되지 않지만 선수들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한국기원에서 훈련 성적에 따라 일정액의 포상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바둑이 개인경기이지만 과거 아시안게임 대표팀 운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공동연구와 선수들의 철저한 관리가 전체적인 기량 향상에 큰 효과가 있다. 현재 중국이 세계 바둑계서 강세를 보이는 것도 이미 오래 전부터 강력한 집단훈련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도 이번 상비군제도 도입으로 특히 나이 어린 신예들과 여자들의 기량 발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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