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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살로 뒤집힌 '허원근 일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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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살로 뒤집힌 '허원근 일병 사건'

입력
2013.08.2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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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6 소총으로 자신의 양쪽 가슴과 머리까지 3발을 쏘아 자살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 의문을 둘러싸고 30년째 진실규명이 계속되고 있는 군 의문사 '허원근 일병 사건'의 결론이 항소심에서 또 다시 자살로 뒤집혔다. 처음 국방부가 자살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방부 특별조사단, 1ㆍ심 재판부까지 네번이나 결론이 뒤바뀐 것이다.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강민구)는 22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타살로 인정된다"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자살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1심에서 9억 2,000만원에 이르렀던 국가의 배상액도 수사 부실로 30년간 의문사로 남았던 것에 대한 위자료만 인정돼 3억원으로 줄었다.

1984년 4월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 중이던 허 일병(당시 22세)은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폐유류고에서 발견됐다. 가슴과 머리에 3발을 쏴서 자살하기 어려운 점, 현장 사진에 피가 거의 없었던 점 등으로 인해 타살된 뒤 시신이 옮겨졌다는 의혹이 짙었지만, 국방부는 자살로 결론 냈다.

이번 고법 판결은 엇갈린 증거들 중 자살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주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M16 소총으로 흉부 2발, 머리 1발을 쏘아 자살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망인과 신체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의 발사 자세를 취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밝혔다. 또 "중대원들이 형사상 공소시효가 휠씬 넘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법의학자들이 3군데 총상 모두에 생활반응(살아 있을 때의 반응)이 있으므로 세발 모두 생존 시 총상" 이라며 자살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현장에 피가 적었던 것에 대해 "M16 소총의 회전력으로 혈액이 비산(날아서 흩어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허 일병의 유족들은 판결에 크게 반발했다. 아버지 허영춘(73)씨는 "국방부의 주장 그대로 판사가 말하더라"며 "말할 수 없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법원의 조정과정에서 '자살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배상액을 1심 수준으로 유지하자'는 국가측 제안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허씨는 "변호사가 (국가에서) 돈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 자살로 하자는데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와, 진실을 규명하려고 몇십년 동안 싸워 온 것이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허씨의 변호인은 "사인에 대해서 더 이상 다투지 않겠다는 조정이 아니라 사인을 자살로 인정하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이어서 제안 자체가 모순이었다"고 말했다.

허 일병 사건은 이번 고법판결까지 결론이 네 번 뒤집혔다. 2002년 9월 1기 의문사위가 처음으로 사인을 타살이라고 발표한 후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다시 자살로 결론을 뒤집었고, 2004년 2기 의문사위는 또 타살로, 이후 2010년 서울중앙지법이 타살로 판결했다.

2002년 의문사위는 중대원 중 한명인 전모씨가 "밤에 술판이 벌어져 술에 취한 하사관이 끓인 라면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허 일병을 쏴서 죽였다. 중대원들이 동원돼 시신이 옮겨지고, 내무반은 물청소로 피를 없앴다"고 진술한 것 등을 근거로 타살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결론이 뒤집힌 데에는 전씨를 제외하고 중대원 모두 자살이었다고 주장한 이유가 컸다. 전씨가 의문사위에서 조사협조 보상으로 3,000만원을 받은 것도 문제가 됐다. 전씨는 각각 다른 국가기관에 수없이 호출돼 진술을 하다가 결국 12번째 신문에서 "의문사위의 유도신문에 넘어가 허위진술을 했다"고 밝혔지만 그가 진술을 번복한 정확한 이유는 베일에 싸여 있다. 1심 법원은 전씨의 주장을 배척하고도, 여러 법의학적 의문점을 이유로 타살로 결론 내렸었다.

허영춘씨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며 상고 의사를 밝힌 상태여서, 허 일병 사건의 최종 결론은 대법원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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