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삼는 최저생계비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도록 하고 현재 최저생계비를 심의 의결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역할을 축소하는 법 개정안을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장관 재량에 따라 수급 대상자를 정할 수 있어 국민의 기본 권리가 예산에 휘둘리는 등 행정편의적으로 다뤄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22일 유재중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수급자 선정기준에 대해'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으로 한다'고 명시한 조항(5조)이 '소득인정액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로 바뀐다. 현재 최저생계비는 3년마다 계측조사를 하고 공익대표, 민간전문가, 관계부처 공무원(13인 이내)으로 구성된 중앙생보위에서 심의ㆍ의결한 뒤 복지부 장관이 공표하도록 돼 있지만 개정안에선 최저생계비 계측조사 조항(제6조 3항)이 아예 삭제된다. 또한 총리실 소속 사회보장위원회의 심의ㆍ조정을 거치면 중앙생보위의 심의 의결을 생략할 수 있다고 명시(제20조)해 사실상 중앙생보위의 권한을 축소시켰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전담하는 중앙생보위와 달리 사회보장정책 전반을 심의하는 사회보장위원회는 위원 절반이 각 부처 장관으로, 재정 부담이 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예산 논리에 밀려 보장이 축소될 여지가 있다.
당정협의를 거쳐 마련된 이번 개정안은 사실상 정부안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다가오는 정기국회 통과를 유력시하고 있다.
이에 참여연대를 비롯한 40여개 시민단체는 "식품비, 주거비, 교통통신비, 피복비 등 10여개 항목의 370여가지 필수품을 화폐가치로 환산하는 최저생계비 계측을 포기한데다 장관이 수급자 범위를 자의적으로 결정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서를 내는 등 반발하고 있다. 올해 한달 소득(1인)이 최저생계비(57만2,168원) 이하라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개정될 경우, 장관 재량에 따라 기준이 매번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빈곤층의 생계, 주거, 의료를 통합적으로 지원해온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내년부터 맞춤형 급여(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개별 지원)로 쪼개지면서 현재의 계측조사가 의미가 없어졌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3년마다 행해지는 빈곤실태조사를 보완, 법정조사화해서 계측조사를 대체하고 '중위소득 30% 이하'를 생계급여 지원대상자로 정하는 등 상대적 빈곤 개념을 도입해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법에 명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은 "상대빈곤 개념 도입과 그 수준이 법률에 명확히 명시되지 않으면 급여가 예산에 따라 움직이는 등 정부의 자의적인 결정이 이뤄지더라도 이를 견제할 특별한 수단이 없다"며 "수급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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