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미스터리20, 30대 팬은 수두룩하다는데 그동안 명성에 비해 책 안팔려 내 고정독자들은 구매력이 없는 듯하루키 독주에 제동'색채가 없는 다자키…'와 붙는다 해서 처음엔 "미쳤구나" 했는데 예상외 선전 내가 강해진 게 아니라 하루키가 약해져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스럽게판매·평가 구애안받고 즐기는 마음으로 등단 18년 되면서 그런 상태로 회귀 연재 안하고 선인세 안받으며 초심 유지잘난 척하는 잘난 작가이번 소설 쓰다가 힘들어 접으려 하다 '나밖에 쓸 수 없는 소설' 생각하며 극복 연쇄살인범·흡혈귀·스파이… 내가 한국문학에 가지고 들어온 것
수년 전 "김영하 소설은 의외로 잘 안 팔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의외로'라는 부사와 함께 막연히 떠오른 숫자는 대략 30만~40만부였다. 소설 시장의 지리멸렬한 침체를 딴에는 감안했다. 그래도 김영하(45) 아닌가. 그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가 현단계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A급 작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더해 대중적 인기도 소설가로서는 도드라질 만큼 뜨겁다. 지난달 24일 출간된 (문학동네 발행)의 프리미어 낭독회에는 무려 1,000명의 젊은 독자들이 몰려들었다. 데뷔부터 파격적이고 화려했던 이 작가만큼 소위 '잘 나간다'는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작가도 없을 터. 아마도 이것이 기묘하고도 착잡한 '김영하 착시효과'의 원인일 것이다.
잠시 속된 숫자의 나열이 이어지겠다. 1995년 등단한 이 중진작가의 판매 기록은 96년 나온 첫 책 의 6만~7만부가 최고다. 그것도 17년간 끌어 모은 누적 판매 기록이다. 2000년대 한국문학의 결정(結晶)이라 할 만한 같은 작품은 그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 여름, 이 실속 없는 유명작가에게 '사건'이 벌어졌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연쇄살인범의 혼돈을 그린 이 출간 한 달도 안 돼 판매 부수 5만을 넘겼다. 하루 평균 2,000부씩 주문이 쏟아져 지난 한 주일 새만 1만부 넘게 팔려나갔고, 출판사는 22일 1만부를 또 증쇄키로 했다. 생애 처음으로 베스트셀러 순위 종합 10위권 안에 들었으며,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치고 종합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서울 문단의 소란을 떠나 연고 없는 부산에서 고요히 살아가고 있는 그를 20일 파주에서 만났다.
-참 실속 없는 작가 생활을 해왔다.
"문단의 미스터리다, 내가. 문학판 안에서의 명성에 비해 책은 많이 안 팔린다. 마이너출판사랑 일하는 것도 아니다. 출판사는 늘 최선을 다하는데 그렇다. 탄탄한 고정 독자가 있지만 많지는 않은 거다."
-어딜 가도 김영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서로 빌려주나? 돌려 읽고?(웃음) 제 독자는 아직까지 20, 30대가 많다. 옛 독자들이 제가 나이 먹는 대로 따라오지는 않았다. 구매력이 없잖나, 그들은."
-처럼 구매력 있는 중년 남성이 읽을 만한 책을 써야지.
"그러니까. 어, 세 권짜리야? 오만원? 사지 뭐.(웃음) 반면 제 독자들은 만원에도 벌벌 떠는 것 아닐까, 추정은 하고 있다."
-'한국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마 김영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모종의 혐의 같은 것을 오랫동안 품어 왔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기대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5월에 을 탈고하고 문학동네에 언제 책을 내면 좋겠냐 물었더니, 여름에 나오는 하루키 책이랑 같이 붙이자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미쳤구나, 드디어" 그랬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선전하고 있어서 기분 좋다."
-분석 같은 것, 혹시 혼자 안 해봤나.
"분석은, 하루키가 약해졌다는 거지. 김영하가 강해진 것 같진 않고. 이번 소설이 하루키 고정 독자들 외에는 그렇게 임팩트를 못 준 것 아닌가 싶다. 저는 소설 경향이 좀 다양하고 관심사도 다양하다. 일단 이란 제목부터 저랑 어울린다고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뭔가 김영하스럽달까."
- 제 인터뷰 질문지를 컨닝했나. 지금 그 질문 "이번 작품은 굉장히 김영하스럽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느낌인데"를 하려고 했는데.
"안 봤다(웃음). 이번 소설 쓰면서 예전 쓸 때의 기분이 있었다. 그때는 스물 여덟, 남성호르몬이 충만할 때였다. 두 소설은 분량(150쪽 안팎)도 비슷하고, 형식과 구성이 특이하다. 대담함이 있고, 독특한 범죄자가 등장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저에게는 오랜만에 돌아가는 익숙한 세계 같은 느낌이었다.
저는 문학계에 나올 때 소위 문단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등단 두 해 전인 93년도까지 라는 계간지가 있는지도 몰랐다. 정말 천둥벌거숭이로 나왔다. 어떻게 써야 하고, 어떤 게 문학적이고에 대해 전혀 감이 없었다. 내 멋酉?거침 없이 몸 속의 호르몬이 시키는 대로 썼던 거다. 재밌는 건 등단 18년이 되면서 다른 의미에서 그런 상태로 되돌아간 것 같다. 문단에서 겪을 것 다 겪었잖나. 운이 좋아서 이런 저런 상도 많이 받고. 이제야말로 18년 전처럼 맘대로 쓸 수 있는 때가 됐다. 판매라든가 문단의 평가라든가 이런 것들에 전혀 구애 받지 않고 즐기는 마음으로."
-그런 말 온전히 믿지 않는다.
"구애 받았던 적 물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이걸 꼭 소설로 낸다는 생각도 없었다. 지난 4,5년 간 쓰고 발표하지 않은 장편이 서너 편 있다. 완성한 것도 있고 쓰다 만 것도 있고.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새로 쓸 때 훨씬 마음이 편하다. 예술가로 오래 살아가려면 크리에이티비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들을 고안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그냥 하루하루 밥벌이로 살아간다. 그래서 요새 안 하는 게 연재다. 선인세도 안 받는다. 선인세는 받으면 빚쟁이다. 계약에는 유효 기한이 있고, 어떤 책을 쓰겠다는 내용도 미리 정해야 한다.
저는 인세도 일년에 몰아서 한 번 받는다. 중간중간 책 찍을 때 받지 않고 연초에 1년치를 몰아서 받고, 그걸 12개월로 나눠 산다. 그렇게 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을 쓰도록 시스템을 바꾼 거다. 작품도 연재 없이 전작으로 발표한다. 그래서 신인 때로 돌아간 느낌이 더 있는 것 같다. 신인 때는 누가 선인세를 주지도 않고, 연재 시켜주는 데도 없고, 저 혼자 집에서 이게 책으로 나올지 어쩔지도 모르고 썼던 거였으니까. 초심으로 돌아가려면 마음만으로 안 되고, 장치랄까 그런 게 필요하다."
-외람되지만, 최고 판매 기록 6, 7만부로는….
"그런 책이 한 17권 되지 않나. 그리고 애가 없어서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다."
-그런 작가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가정의 형태를 거기에 맞춘 건가?
"그렇게 말하면 지나치고. 옛날부터 머릿속에 그린 미래 가정의 모습에 제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아쉽거나 그렇지는 않다."
-문학이 늙지 않는다. 독자는 나날이 늙고 있는데, 작가는 여전히 젊은 감수성으로 작품을 해오고 있다.
"신인 때부터 이미 애를 낳지 않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선배 작가 한 분이 작가는 모든 걸 경험해봐야 한다, 애를 낳고 키우는 것도 경험해 봐야 작가가 커진다고 충고해 주셨다. 그래서 제가 '그럼 애를 안 낳고 늙어가는 사람의 얘기는 누가 쓰나요' 반문했다. 이것도 프루스트가 말한 이 길이냐 저 길이냐의 문제일 뿐, 모든 걸 포괄하는 길이란 건 없다. 저는 제 또래의 사람들과는 달리 철이 안 드는 길을 선택했다. 제 소설이 나이 들지 않는다면, 같이 출발했던 독자들이 저를 더 이상 많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거기에는 삶의 조건들이 너무 다른 것도 있을 거다."
-에 대해 시비를 좀 걸어보려고 한다. 이거 왜 이리 짧나. 최선을 다한 것 맞나.
"가까운 분이 치매를 겪었는데, 이분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뭔가를 지속하는 거더라. 치매 환자는 계속 꺼지고 계속 리셋 되는 컴퓨터 같다. 저는 이 분량도 상당히 수다스럽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작가로서 이렇게 말이 많아도 될까, 쓰면서 계속 걸렸다. 인물과 스토리에 가장 걸맞은 형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만큼 쓰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웃음)"
-문장의 밀도가 상당히 높다. 개별 문장 단위에서 아포리즘 형식이 계속 관철됐다. 단문 세대를 위한, 트위터 맞춤 소설인가?
"140자 안에 들어가기 딱 좋은? 평범해 보이는 여러 문장들이 충돌하면서 이상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게 제 소설이고 문체다. 미술로 보자면 콜라주, 영화는 몽타주 같은 느낌. 그런데 제 문장들이 따로 떼어져서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저도 어딘가에서 늘 제 글을 마주치는데, 항상 교정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전체로서만 의미가 있지, 일부로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제목이 아멜리 노통브의 과 매우 흡사하다.
"처음엔 김경주 시인의 시에서 따다 라고 붙였는데 안 어울린다는 의견이 많았다. 은 불현듯 떠오른 제목인데, 노통브가 있긴 하지만 너무 괜찮은 제목이라 다른 제목은 들어오지가 않았다."
-한국문학의 장에서 연쇄살인 같은 건 사실 꺼려지는 제재인데.
"제가 한국문학에 가지고 들어온 게 좀 있다. 킬러, 흡혈귀, 스파이, 연쇄살인범, 양아치 같은 주인공들이다. 한국소설에서는 지식인 화자가 대부분인데, 충격이었다고 들었다. 한국문학의 정전들을 읽지 않았고, 그냥 어렸을 때 보던 추리소설 탐정소설 모험소설, 세계문학전집 비슷하게 쓰면 되는 줄 알았던 거다. 지금도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도 하루키와 비슷하다.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
"어떤 게 있나. 내가 훨씬 잘 생겼는데. 키도 크고."
-그 분 실제 뵌 적이 없어서…
(단호하게)"아주 작다. 저는 183㎝. 무라카미상 같은 경우는 사실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고 있다고 본다. 재능이다. 반면 저는 지루함을 못 견딘다. 그 양반 하시는 마라톤, 그런 거 못한다. 소설적 세계도 반복하는 거 되게 싫어한다. 하루키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미성숙의 아이콘이다. 저는 성숙한다는 것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젊은이 얘기를 쓰든 늙은이 얘기를 쓰든 거기엔 성숙함이 배었으면 한다. 하루키는 의식적으로 그 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그렇게 좋아하겠지."
-김영하는 정말 잘났다, 그런데 그걸 굳이 감추지를 않는다는 인상이다. 오만해 보인달까. 서문에도 "이 소설은 내 소설이다. 나밖에 쓸 수 없는 소설이다"라고 썼다. 인정하는데, 꼭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해야만 했을까.
(웃음)"쓰는 동안 너무 힘들어서 내 재능을 의심하게 됐다. 중반쯤 접으려고 했는데, 내가 쓰지 않으면 이 인물, 이 문체는 존재하지 못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에는 정말 독특한 목소리가 있는데. 아, 이것도 잘난 척인가? 그래서 힘을 내서 나머지 반을 썼다. 이 얘기를 듣더니 출판사에서 카피로 뽑더라. 평론하는 신형철씨가 괜찮겠냐고 걱정하기는 했다. 뽑아놓고 나니까 섹시하기는 한데, 잘난 척하는 것 같긴 하다."
-가장 먼저 소설로 해외에 진출한 작가다.
"지금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탈리아어 판이 나와서 다음달 이태리에 간다. 그 다음달에는 독일에서 단편집이 나오고, 내년에는 가 미국과 프랑스에서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17권을 냈는데 늘 5만,6만부 수준이라면, 그것만 갖고는 노후를 보장할 수가 없다. 아, 안 되겠구나. 십시일반으로 여러 나라에서 좀 모으면 괜찮지 않겠나. 여러 나라에서 초판만 찍더라도 모으면 꽤 되니까. 그런 여러 가지 안전판으로 생각했던 거다. 근데 주효했다. 국내에서 가끔 생활이 쪼들릴 때 해외에서 좀 들어와주고. 저 이전에는 해외에서 인세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한국 작가들이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왜 안 된다는지 모르겠더라. 98년 가 프랑스에서 처음 나왔을 때부터 선인세를 받았다. 3,000유로 받았는데 되게 뿌듯했다."
-한국 독자들에 대해 실망 같은 것, 느꼈을 것 같다. 원망도 해봤을 것 같고.
"하하하. 글쎄. 신인 때는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꾸준히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로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러자면 재정적 장치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마음가짐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 독자를 인격화된 존재라고 생각하면 마음 상한다. 독자는 자연이다. 태풍이 불든 꽃비가 내리든 누구도 자연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작가로서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독자 리뷰 안 본 지도 꽤 됐다.
공자가 술이편에서 '부라는 것이 만약 추구해서 가능한 것이면 내가 추구했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기에 나는 그냥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안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 소품이고, 70대 노인이 주인공이고, 치매 얘기가 나오고. 그런데 팔린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거, 쓰고 싶은 걸 써야 되는구나 싶다. 독자라는 건 역시 자연이구나. 지금은 물이 들어온 거다, 그냥. 나는 배 위에 있었을 뿐이고."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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