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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8월 23일] 쿠바, 일장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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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8월 23일] 쿠바, 일장춘몽

입력
2013.08.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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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다녀온 쿠바는, 오가기에만 닷새씩이나 걸렸다. 미국과 멕시코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쿠바인 여행객이 없는 조그만 아바나 공항은 불편하고 불친절했다. 공항에서 시내를 오가는 유일한 방법은 엄청난 가격의 택시뿐이었다. 미리 예약한 호텔도 가격에 비해 예상 외로 불편했다. 물 한잔 마실 수도 없었고 컵조차 없었다. 카운터에선 지도 한 장 얻을 수 없었고 스페인어 외에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는 세상이 떠나가도록 시끄럽다가도 내가 말을 걸면 모두 외면했다. 모두들 그냥 해피하다고만 했고 카스트로 형제에 대한 질문 등에는 침묵했다. 쿠바에서 말을 받아준 사람들은 물건을 팔거나 돈을 바라는 사람들뿐이었다. 잠깐 길을 물어도 1달러라며 손을 벌렸다. 세상에, 수 십 년간 꿈에서 그리다가 정말 어렵게 찾아온 참된 사회주의 나라라는 쿠바가 이렇게 돈에 미쳤다니!

고급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사먹고 비싼 매연 택시로 쏘다니는 것 외에 쿠바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비싸다는 것은 우리나라 물가보다 높을 뿐 아니라 쿠바 사람들보다 수 십 배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용품이 그러했다. 물어물어 산 넘고 물 건너 몇 km를 가도 상점이 없었다. 몇 시간 만에 겨우 찾은 상점에는 물건이 거의 없었다. 납작 건빵 같은 것과 외제 소시지가 전부였다.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아바나 구시가지는 매연 때문에 다닐 수도 없었다. 코를 막고 미술관을 찾아도 볼 만한 그림이 없었고 박물관에도 카스트로가 쏘았다는 총 몇 자루처럼 볼게 없었다. 몇 시간이나 걸려 열람증을 받은 국립도서관의 열람자 수 보다 훨씬 많은 수십명 사서가, 대출을 신청한 지 몇 시간 뒤 건네준 것은 공산당 기관지 몇 장뿐이었다. 겨우 찾은 책방에서는 정부 팸플릿만 있었고 어쩌다 외국에서 나온 책을 찾아 읽어보려고 하면 주인이 달려와서 사지 않으려면 만지지도 말라고 하며 눈을 흘겼다. 화구를 살려고 며칠을 다녀도 찾지 못했다. 화방에서 물어보니 특별한 배급품이라고 했다. 어떻게 구하냐고 했더니 달러가 많으냐고 물었다.

쿠바에 가기 전 그곳의 생태, 의료, 교육, 치안, 음악, 노동 등등에 대한 꿈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읽고 들었다. 그러나 아바나에서 내가 본 유일한 도시 농장은 시골의 내 밭보다 작은 곳이었고, 유기농이라는 것도 비료를 비롯한 농업 약품을 만들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었다. 교외에 있는 병원은 의사와 환자들만 득실댈 뿐 의료 시설도, 기구도, 약품도 없었고, 시내에서 본 유일한 병원인 정신병원은 고야의 그림에 나오는 야만의 풍경이었다. 대부분의 학교나 거리 벽은 모두 카스트로 어록으로 가득했다. 아바나 대학은 학기 중인데도 너무나 조용하고 한산했다. 스스로 나를 안내하겠다고 나선 대학생은 컴퓨터 살 돈을 요구했다. 대학에서도 어디에서도 한국인을 보지 못하다가 마지막 날 헤밍웨이 박물관에 갔다가 중남미 패키지여행을 하는 한국인들을 만났다. 여행가격이 1,000만 원을 훨씬 넘는다고 해서 놀랐지만 그곳이 쿠바인지 어딘지도 잘 모르는 점에 더 놀랐다.

어쩌면 나도 마찬가지다. 저 TV나 영화나 책 속의 아름답고 흥겨운 쿠바가 아니었다. 거리에, 해변에 넘친다는 음악도, 춤도, 행복도 나는 비싼 레스토랑에서만 보았다. 1950년대 미국 자동차와 한중일 중고 트럭과 버스가 내뿜는 그 엄청난 매연과 비닐 오염 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허덕이다가 돌아왔다. 쿠바는 5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매연과 오염 보다 더 불쾌한 것은 거리 곳곳에 서 있는 경찰과 군인을 보는 것이었고, 엔간한 집이면 모조리 경찰서와 군부대인 점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수많은 창녀나 실업자나 잡상인들이었다. 모두들 달러를 달라고 외치다가 해가 지면 배급용 비닐봉지를 들고 쓰레기 속 빈민굴로 돌아갔다. 빈부격차가 그렇게도 분명한 나라는 세상에 다시없었다. 제발, 정말, 일장춘몽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꿈에서도 볼까 두렵다. 제발 나만의 악몽이기를 빈다.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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