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서 문학 기자를 하면 안 좋은 점이 꽤 있다. 일단 일이 많다. 한국일보문학상을 심사위원 위촉부터 시상식, 뒷풀이까지 총괄해 운영해야 한다. 요즘이야 문학상을 운영하는 언론사들이 많아져 특별히 불평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일보에는 팔봉비평상이라는 또 다른 걸출한 문학상도 있다. 해마다 문학비평상을 주는 언론사는 한국일보가 유일하다.
사실 이 정도는 황소처럼 일해야 할 10년차 전후 기자들에겐 애교에 가까운 불평이다. 진짜 스트레스는 다른 데 있다. 바로 그 유명한 '김훈 기자'와 '박래부 기자'다.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든, 오늘날의 한국일보 문학 기자는 영탄조의 그 문장과 마침내 대면하고야 만다. "아, 김훈 박래부 시절 한국일보 문화면 정말 대단했는데."심지어 대놓고 "김훈 선배와 비교되려면 스트레스 좀 받겠다"고 말한 평론가도 있었다. 말하지 못할 내면의 절규. 죄송하지만 저에게는 그토록 거대한 야망이 없답니다. 이것은 '능력이 없다'의 도도한 표현이다.
어제 작은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아 갔다. 문학판 사람들 몇이 밥이나 먹자는 오래 전 약속이었다. 그런데 가보니 이게 무슨 문단 행사장처럼 벅적했다. '깜짝모임'이라는데, 모인 면면이 퍽 공교롭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정홍수, 시인 김정환 강정 신해욱 오은, 소설가 김인숙…. 한국일보 사태 때 기자들 농성 현장으로 지지 방문을 와주고, 기고문을 써주었던 문인들이 거의 그대로 다시 모여 있었다. 우연인가? 아니었다. 이 깜짝모임은 12일부터 재개된 한국일보의 정상 발행을 축하하기 위해 '치밀하게 사전 기획된' 자리였다.
참석자들이 한마디씩 건배사를 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황현산 선생은 "기자 여러분들이 고생 많이 한 것 다 압니다. 이것(한국일보 정상 발행)은 한국 문학에도 참 좋은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정환 시인은 정상화 지면 첫 날 기사에 시비를 걸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언론의 멀쩡함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이고, 미래라고 추켜세워준 김정환 시인이 있었다' 고 쓴 구절이 틀렸다며, 자신은 결코 추켜세워준 것이 아니라고, 언론중재위에 제소라도 할 태세였다. 자칭 시위 현장 전문가인 그는 "중산층 노동자들의 약삭빠른 싸움에 환멸을 느껴 현장을 떠난 지 오래였는데, 한국일보 기자들의 싸움에서 동아투위의 정신을 느꼈다"고 했다. '정도로 가면 이긴다'를 보여줬다고, 그래서 되려 고맙다고까지 말했다.
한국일보가 문인들로부터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 데에 나는 기여한 바가 없다. 이 사랑은 오로지 탁월했던 선배들이 쌓아온 면면한 전통 때문인 것을 잘 안다. 이를테면 나는 거인의 어깨를 밟고 올라선 난장이 비슷한 입장이 되어, 뿌리 깊고 우람한 나무가 맺어내는 열매를 다만 누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문학이 왜 이렇게 한국일보를 걱정해주는 건지 의아할 때도 있다. 오늘날 문학이 얼마나 옹색한 처지에 몰려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사고의 다음 수순은 자연스럽게 한국일보는 한국문학을 위해 무엇을 했고, 하고 있는가 하는, 자학과 자괴와 반성이 뒤섞인 복잡한 지점에 이르게 된다.
듣자 하니 다른 신문사에서 문학 기자는 그리 인기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한다. 편집국에서도 권력의 축은 이미 영화로 이동했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이 도도한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며, 문학 기자를 하고자 하는 젊은 기자들이 한국일보에는 유독 많다. 문학 기자들끼리 모이는 자리에서도, 한국일보 참 특이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일급 인재들로 이루어진 문학 기자 예비군이 한국일보에는 상비돼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이 글이 나가면 문학 담당을 했거나 하려는 동료들로부터 나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문학상 하는 게 무슨 힘든 일이라고 불평이냐 하겠지. 나도 안다. 그냥 맘에 없는 소리 한번 해본 거다. 기자가 된 후 처음으로 나는 나의 취재원들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그 소리를 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런 거다. 나는 한국일보 문학 기자다. 늦은 새벽까지 이어진 큰 술자리에서, 한국일보를 대표해 김정환 시인으로부터 두 곡이나 헌정곡을 받은, 한국문학사에 유례가 없는 기자다. 부러운가. 부러우면 지는 건데.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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