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국내거주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화교 출신 유모(33)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무리한 수사와 법 적용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범균)는 22일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고, 여권법과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만3,170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유씨의 여동생(26)이 국정원 중앙합동심문센터 조사에서 '오빠와 함께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에 포섭돼 함북 회령시 등지에서 탈북자 200여명의 신원정보를 제공했다'고 한 진술을 근거로 유씨에 대해 간첩, 특수 잠입ㆍ탈출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재판부는 유씨의 간첩 활동 혐의에 대해 "직접적이고 유력한 증거는 여동생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데 진술 중 일부는 객관적인 증거와 명백히 모순되고 일관성 및 합리성이 없는 부분도 있는 등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유가 발견돼 배척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유씨가 북한에 직접 가서 보위부의 지령을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이 유씨의 여동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형사소송법상 기본절차를 지키지 않은 점도 드러났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이 같은 진술을 했더라도 피의자에게 미리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아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며 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국정원 심문센터에 장시간 구금돼있으면서 수사관들로부터 폭행, 협박 및 가혹행위를 당하고, '자백하면 오빠와 함께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회유를 받아 거짓 진술을 했다"는 여동생의 주장은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씨가 북한에 거주하던 중국 국적자(화교)임을 속이고, 순수 탈북자를 가장해 한국에 들어 와 탈북자정착지원금을 수령하고 여권을 발급받은 점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국적이 밝혀질 경우 힘겹게 이룬 생활터전을 잃고 강제 추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검찰은 "부당한 판결"이라며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검찰은 탈북자를 이용한 북한의 공작활동을 근절해야 한다며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구형했었다.
유씨를 변호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국정원의 간첩사건 조작 의혹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유씨는 2004년 탈북자로 위장해 입국했으며 2011년 서울시의 탈북자 대상 2년 계약직 공무원(주무관)으로 채용돼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에서 탈북자 지원 업무를 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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