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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몹쓸 일이었어…" 눈물 맺힌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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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몹쓸 일이었어…" 눈물 맺힌 진실

입력
2013.08.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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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햇살이 따가운 21일 오후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순(86)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은 채 부축을 받아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자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던 17개국 60여명의 젊은이들이 일순 숙연해졌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주최한 '제2회 유네스코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청년 포럼' 참석차 방한한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살아있는 역사의 증거와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이 할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청년들이 역사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위안부 경험을) 말하고 싶어. 참 몹쓸 일이었어…." 부산이 고향인 그는 1942년 일본인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가 수년 간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해방 이후에도 중국 옌지(延吉)에서 지냈던 그는 2000년에야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도쿄대에서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전공하는 여성 미사토 나가카와(23)씨는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 논쟁이 되는 사안이라 관심을 갖고 팩트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그런데 막상 할머니를 만나니 중요한 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왔어요." 그는 앞서 위안부 역사관을 둘러보던 중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처럼 일본 정부에서도 사과를 했다"면서 "이것만으로는 위안부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이라고 할 수 없지만, 한국인들이 일본 정부가 사과를 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루마니아에서 온 에마 니투(23ㆍ대학생)씨는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과거의 아픈 상처를 용기 있게 털어놓는 할머니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를 단지 아픈 과거가 아닌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프가니스탄의 시민운동가 에나야툴라 사피(28)씨는 "위안부 문제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라며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Blind to the truth(진실로부터 눈이 멀다)'. 일본인 교사 하지메 하마다(35)씨는 수첩에 적은 메모를 보여주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단순히 '전쟁이 일어났고 피해자가 나왔다'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직접 와 보고는 우리가 얼마나 진실을 모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한국인도 일본인도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중심을 잘 잡아서 함께 과거사를 극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9일부터 열린 포럼에 참가한 이들은 20일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시민활동가 마츠무라 노리코씨의 강연을 듣고, '무엇이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가로막는가' 등을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22일 전체회의를 거쳐 '동아시아 역사화해 청년 보고서'를 채택하고, 구체적인 실천 프로젝트를 발표할 예정이다. 주최 측은 "동북아의 첨예한 역사 갈등을 기성세대의 시각이 아닌 젊은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해법을 찾아보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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