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학교 무상급식 지원 예산 전액 삭감을 선언한 파장이 만만찮다. 김 지사는 최근 도의 재정난을 내세워 "빚을 내면서까지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할 순 없다"고 했다. 도에서 도교육청에 지원키로 했던 예산은 860억원. 그 중 무상급식과 직접 관련된 예산은 도 내 전체 학교 무상급식 예산 7,131억원의 5%도 안 되지만, 격한 반발과 비판을 샀다.
김 지사는 지레 "무상급식 예산 삭감은 정치나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예산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소속임에도 그 동안 전면 무상급식을 수용하는 듯했던 그가 입장을 바꾸자, 야권은 허를 찔린 듯 들끓었다. 민주당과 진보교육감의 좌장 격인 김상곤 교육감의 경기도교육청 등에선 즉각 "(보수층의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적 승부수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거나, "민심과 맞서려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말로를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며 공세의 날을 세웠다.
하지만 김 지사를 향한 비판에서 정작 주목되는 건 정치적 복선 따위가 아니다. '낭비적 사업을 줄이면 얼마든지 예산 지원이 가능하다'거나, '보편적 복지와 무상급식에 관한 국민과의 신성한 합의' 같은 비판 논리에서 드러나는 재정 현실에 대한 외면과 무상급식에 대한 신성불가침적 태도다.
올해 초 '박근혜 복지의 그늘'(1월16일자 메아리)이라는 칼럼에서 합리적 재원조달 없이 무상복지가 확대되면 재정집행 우선 순위가 무리하게 뒤엉켜 선의의 피해가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보육, 무상교육까지 강행 추진되면서 중앙과 지방의 재정 스트레스와 무상복지에 밀려 재정지원에서 소외된 부문의 피해는 우려대로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만난 서울의 한 사립중학교 행정실장은 무상급식 시행에 따른 시교육청 재정집행의 부조리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는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의 우울하고 격한 어조로 "원어민 교사 없어진 건 물론이고 시설ㆍ환경개선 지원금까지 다 끊겼어요. 그나마 시설 좋은 공립은 그렇다 해도, 죄 없이 낡은 사립학교에 배정 받은 학생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겁니까. 복도 벽에 페인트칠조차 새로 하기 어려워졌는데…."
무상복지에 대한 신성불가침적 태도는 비단 야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박 대통령이 다수의 거듭된 지적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증세 없는 복지'라는 이율배반적 공약에 얽매여 있는 상황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세법개정안이 서민ㆍ중산층 증세 역풍에 휘말려 좌초하는 상황에서 솔직히 증세에 나서든지, 무리한 복지공약을 구조조정 하든지 분명히 하라는 여론에도 박 대통령은 꿈쩍도 않고 '증세도 없고, 복지 축소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국민에게 세금부담을 덜 주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왜곡하여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차제에 낭비적 재정운용의 악습을 바로잡겠다는 복선이 담겨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대통령의 세출 구조조정 요구는 낭비적 재정운용 관행을 어느 정도 바로잡겠지만, 필연적으로 선의의 피해를 일으키는 재정집행 우선 순위의 뒤엉킴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식으론 부족한 복지재원이 무리 없이 조달될 가능성보다는 막판에 몰려 정부 부채만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든 보편적 복지든, 부의 양극화와 빈곤의 새로운 확산에 대응한 복지 확대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청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특정 복지공약과 무상복지가 한 치의 수정도 용납되지 않는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여겨져서는 곤란하다. 불가피하다면 증세를 할 수도 있고, 재정이 뒤엉키면 무상복지 이행 계획을 수정할 수도 있다. 진통이 없을 순 없겠지만, 증세와 복지의 현실적 균형점을 찾기 위한 정부의 진지한 노력을 이해 못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본다면 지나친 낙관일까.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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