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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즐겨 읽는 테니스 '슈퍼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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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즐겨 읽는 테니스 '슈퍼 주니어'

입력
2013.08.2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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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 4강이 목표지만 "이기고 지는 건 병가지 상사"… 17세 학생 같지 않은 평상심지독한 약시로 안경 착용… 테니스 선수론 약점이지만 정신력으로 장점으로 바꿔오렌지볼 12, 16세 제패 후 6월엔 퓨처스대회 단식 정상내년 아시안게임 금 1차 목표… "한수 배우는 자세로 임할 것"

"세상이 달라졌냐구요? …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차분했다. 지난 7월 '테니스 최고봉' 윔블던대회 주니어 단식 준우승을 차지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슈퍼 주니어' 정현(17ㆍ삼일공고 2년). "시합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ㆍ늘상 있을 수 있는 일)라고 들었어요.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테니스 100년만의 경사'라며 '난리'가 난 주위 분위기에 우쭐할 법도 한데 그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달 1일(현지시간) 개막하는 US오픈 테니스 주니어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22일 미국 뉴욕으로 출국하는 정현을 20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테니스 코트에서 만났다.

사실 한국 남자테니스에서 정현의 존재는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수년 전만해도 정현보다 훨씬 뛰어난 '무공'을 뽐낸 주니어들이 다수 있었다. 이들은 세계랭킹 1위에도 이름을 올리며 테니스인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탄탄한 하드웨어에 테크닉도 '나름' 좋았다. 하지만 시니어에 접어들면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멘탈이 문제였다.

하지만 정현은 달랐다. 안경너머 언뜻 언뜻 비치는 눈빛에선 배우려고 하는 열망이 이글거렸다. 이날도 한낮 이글거리는 뙤약볕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는 연신 라켓을 휘둘렀다. 코치가 쓴 소리를 해도 귀담아 들었다. 냉정을 넘어선 뜨거운 겸손이다. 열 일곱 살 학생의 마음가짐이라곤 믿기지 않았다.

정현은 윔블던에서 자신감 획득을 가장 큰 소득으로 꼽았다. 주니어 랭킹1위 닉 키르키오스(18ㆍ호주)를 16강전에서 2-0(6-2 6-2)으로 완파하면서 동력을 얻었다. 2012년부터 정현을 전담 지도하고 있는 윤용일(삼성증권)코치는 "현이가 스스로 게임을 풀어가는 능력을 보여 줬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흐름상 넘어가는 게임을 뒤집는 것을 보고 훌쩍 성장한 느낌을 받았다. 멘탈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높이 평가했다.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장도 "정현은 육체적으로 보면 약점이 많은 선수다. 지독한 약시로 인한 안경착용은 경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약점을 감추지 않고 극복하려 애쓴다. 약점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장점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게 스포츠다"라고 말했다.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인 주 회장은 윤용일, 이형택, 박성희, 조윤정 등 메이저대회 본선을 누빈 스타들을 길러낸 명장이다.

주니어 랭킹 13위 정현은 US오픈에서 8번 시드를 배정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윤 코치는 "상위 랭커 5명이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윔블던처럼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윤 코치는 "윔블던 준우승 이후 (정)현이가 각종 행사에 다니면서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며 섣부른 기대감을 경계했다.

정현은 지난해 US오픈 주니어 16강행에 실패했다. 이번 대회에는 4강행을 목표로 잡았다. 그는 "4강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한 수 배우고 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정현은 특히 12시간이 넘는 미국행 비행기에서 '손자병법'을 독파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적이 쉬면 피곤하게 하고, 뭉치면 흩어지게 하라', '적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적보다 먼저 진영에 도착해야 한다'는 문장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정현의 테니스 본능은 일찌감치 싹을 틔웠다. 주니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오렌지볼 12세, 16세부를 제패한 정현은 지난 6월 김천 국제퓨처스 대회에서 한국 선수 중 최연소(17세1개월)로 단식 정상에 올랐다. 당시 남자프로테니스(ATP) 랭킹 598위였던 정현은 294위 엔리케 로페스 페레스(22ㆍ스페인)를 세트스코어 2-0(6-2 6-3)으로 꺾었다. 퓨처스는 가장 등급이 낮은 대회지만 프로 데뷔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무대다. 윤 코치는 "올 연말부터 퓨처스를 떠나 상위 등급인 챌린지 대회에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차 목표는 내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손에 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현은 US오픈 직후 내달 21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ATP 투어 말레이시아 오픈(총상금 98만4,000달러) 본선 직행 와일드카드를 받았다. 정현의 매니지먼트사인 IMG가 주선한 무대다. IMG는 2008년 정현의 가능성을 보고 전격 발탁했다. IMG는 정현이 윔블던 준우승을 차지하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ATP투어 와일드카드는 퓨처스와 챌린지 대회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대우다. 정현과 함께 와일드카드를 받은 선수가 랭킹 44위 마르코 바그다티스(28·키프로스)다.

1회전에서 탈락해도 8,000달러를 손에 넣고, 2회전에 오르면 상금이 1만5,000달러로 늘어난다. 정현은 "돈과 명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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