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번질 가능성 낮지만, 외환당국 감시체제 강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가시화하면서 인도에 이어 인도네시아 태국 등 경상수지 적자를 겪고 있는 아시아 신흥국으로 금융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나라들에서는 연일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주가와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채권 금리도 급등하는 트리플 하락세를 겪고 있다. 우리 정부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국내외 경제ㆍ금융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나섰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외환과 금융시장은 쇼크가 있을 수 있어, 긴장감을 가지고 양적완화 축소 타이밍이나 국제금융시장 흐름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주요 신흥국에 대한 시장동향 점검과 함께 외화유동성 등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 정보를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시장불안 조짐이 발생할 경우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따라 신속 대응키로 했다. 현 부총리는 “우리나라는 아시아 신흥국과 상황이 다르지만 재정, 국제수지 흑자 기조 정착이 중요하다”며 “위기관리와 거시경제의 안정적 운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밝혔다.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불안은 국내 증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3일부터 전날까지 5거래일 연속 주식을 순매수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날 1,443억원 어치를 내다 팔면서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0.39포인트(1.08%)내린 1867.46으로 마감했다. 나흘 연속 하락으로 지난달 12일 이후 27거래일 만에 1,860선으로 밀렸다. 류용석 현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좀더 지수 하락이 이어질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신흥국과 달리 한국의 경제여건이 견고한 점이 부각되면서 신흥국에서 빠져 나온 투자자금이 국내로 유입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인한 충격에서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국가경제 기초체력에서 양호해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은 1998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고 올 상반기에도 297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원화 절상률도 6월 -1.08%이었으나 7월 1.65%, 이달 20일 0.24% 등으로 강세로 돌아섰다. 반면 문제가 된 인도 인도네시아 등은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6월부터 통화가치마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금융시장이 출렁인 신흥국들은 모두 경상수지가 계속 적자였던 나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 아시아 국가들을 외환위기로 몰아 넣었던 1990년대 말과는 사정이 크게 달라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아시아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이 늘어난데다, 달러 조달을 위한 국채발행도 단기보다는 5년 이상 위주로 바뀌는 등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인도 통화가치 급락은 선진국에서 경제 회복 기미가 나타나면서 장기 금리가 상승해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현재 인도의 외화부채가 GDP 대비 20.6% 수준으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상황 등에 비하면 양호해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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