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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군대문화] <8ㆍ끝> 전문가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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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군대문화] <8ㆍ끝> 전문가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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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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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라는 특수 집단의 목표는 단순하다.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강과 규율, 상명하복 등은 필수적인 가치다. 하지만 학교와 회사는 목표도 역할도 군대와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군대를 닮았다면 그것은 병(病)이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대한민국은 거대한 군대를 방불케 했다. 민주 사회의 시민을 길러내야 할 학교는 개성이 억압된 채 순종할 줄만 아는 똑같은 학생들을 찍어내고 있었고 이들은 직장에서 다시 병영을 답습하기 십상이었다. 이런 기묘한 현상을 놓고 권인숙 명지대 교수, 윤민재 연세대 연구교수, 이명수 심리치유센터 와락 운영위원장이 18일 한국일보사에서 얘기를 나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군대문화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언론이 정색하고 짚어본 경우는 드물었다.

▦이명수 심리치유센터 ‘와락’ 운영위원장= 예상은 했지만, 군대의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학교와 직장, 가정에까지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는 사실을 이번 기획을 통해 ‘확인 사살’ 하듯 확인할 수 있었다. 끔찍했다. 우리 사회가 만약 어떤 문제 때문에 무너진다고 하면 아마 군대에서 비롯한 권위적 문화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현실에 군대가 존재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군대문화가 사회로 들어오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윤민재 연세대 사회학과 연구교수= 군대문화 이야기를 하면서 군대가 빠진 점은 아쉽다. 군대문화를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라고 한다면 ‘스펙’ 문화와 겹쳐 보면 이해가 쉽다. 초ㆍ중ㆍ고교에서 가령 군대식 극기 훈련을 꼭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 하나의 스펙으로 여기는 것이다. 군대문화가 스펙 문화와 맞물려 무방비로 사회에 이식되면서 문제가 드러난다. 인권과 교육 문제와 결부해 풀어야 한다.

-이번 기획 취재를 통해 학교든 직장이든 무조건적 복종과 획일성 등을 강요하는 군대문화가 사회 전반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병리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뭔가.

▦권인숙 명지대 교수= 징병제가 대학교 안으로 깊숙이 침투한 게 큰 배경이다. 과거와 같은 학생운동 문화의 지배력이 없어지면서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1, 2학년 때 군대에 간다. 이들이 복학해 대학 내 권력을 장악하고 군대문화를 확산시키기 일쑤다. 이후 취업해서 군대문화를 원형으로 한 기업 문화에 편입된다. 남녀 구분도 없지만 특히 남성들은 다른 조직문화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군대와 군대식 조직으로 계속 옮겨가는 꼴이다. 취직이 가장 절박한 이슈가 되면서 좋은 스펙을 따려고 스스로 군대문화적 경험을 찾아 하기도 한다.

▦윤= 군대문화의 확산은 군대가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든다는 신화에서 출발한다.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어려운 경험을 했다, 진짜 남자로 태어났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부모가 자녀들을 국토대장정에 보내는 것도 사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사장이 종업원들에게 나도 고생해봤다, 나처럼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허상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속도의 문제와도 관계가 있다. 100년이 걸릴 일을 30년에 하면 외형(경제성장)은 그럴싸 해도 내용(국민의식)이 못 따라간다.

▦권= 우리 사회의 공통된 욕망 때문 아닌가. 성공하려면 자기 관리가 필요한데, 군대식 극기 훈련으로 자기를 이기는 경험을 하려는 것이다. 이런 극기체험이 승리의 경험을 집어넣는 과정, 성공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주사(注射)라고 부모들은 굳게 신뢰한다.

-그렇다면 ‘군대 다녀오면 사람 된다’는 통념은 틀린 것인가.

▦이= 극한 환경에서 자기를 이겨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 건 100% 환상이다. 특전사 캠프를 통해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으로 믿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 인간 자체는 변화가 없다. 군대에서 2년 동안 훈련된 습관을 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이틀이라고 하니 말이다. 자기 결대로 살면 되는데 왜 자기를 이기라고 하는가.

▦권= 부모들에겐 대학생들의 생활이 워낙 불규칙하고 문란하기 때문에 군대에 다녀오면 한 동안 규율이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 된다는 건 허상이다. 군대에서는 감내할 수 없는 걸 감내하는 능력을 배운다. 수업시간에 눈을 반짝이며 맨 앞줄에 앉은 복학생들을 모습을 보면서 느낀다. 목적을 위해 자기를 수단화하는 능력만 단련하는 것 같다. 오히려 군대에서 생긴 내상이 많을 테니 경험을 정리해 보고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

▦윤=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근대화 산업화 시대에 전형적인 인간을 우리가 원하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에 대한 평가기준도 바뀐다.

-대다수가 군대문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면서도 실제론 저항 없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지나고 보면 좋았다고 하지 문제를 되새김질하는 이들도 적다. 그건 왜일까.

▦권= 군대문화 자체가 사회적으로 굉장한 보장 시스템이다. 집단주의 문화는 어떤 면에선 아주 편하다. 상사, 선배가 되면 능력과 상관 없이 존중 받을 수 있다. 그러니 편하고 자연스러운 질서가 된다. 대학의 경우 예술대, 체대 등에서 전통적으로 군대문화가 심하게 작용해 왔다. 또래 집단 속에서 기댈 수 있는 방식이 선ㆍ후배 간의 위계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리된 개인주의적인 인간형은 존재할 수 없다. 군대식 문화 속에서 적응하며 정을 쌓고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이 굉장히 깊게 뿌리박고 있다. 그것을 ‘끈끈한 인간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1975년 고교 입학하던 해에 학도호국단이 생겼다. 눈을 가린 색안경을 낀 조교에게 정말 개처럼 맞았다. 그 시절 내가 부끄럽다. 맞으라면 맞아야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내가 너무 싫어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군대 다녀온 사람은 누구나 트라우마가 있다. 상담으로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다 나온다. 하지만 술자리에선 외려 호쾌하게 말한다. 자신이 벌레 같은 존재였다는 걸 고백하는 남성은, 거의 없다.

▦권= 누구나 군대 시절 트라우마와 가학의 경험이 있지만 그걸 감추고 자기 환상적으로 미화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다. 병영생활을 들춰내서 의미를 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윤= 수업 때 군대에 다녀온 남학생들에게 “때려본 적 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하지만 맞아 봤다는 학생이 열 배는 된다. 맞은 사람은 많은데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없는 거다. 가해자가 되면 입장이 달라지고 합리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조직에는 위계와 기강이 필요한데.

▦윤= 위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강압적 관계다. 얼마나 그 관계를 대등하고 민주적인 관계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그 척도가 언어다. 조직에 위계는 필수적이지만 그걸 긍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민주적인 소통 방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 군대의 최대 병폐는 인간의 개별성을 죽인다는 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자기가 살아있는 것 그 자체로 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삶에 대한 저항력이 생긴다. 하지만 군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벌레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요즘 군에서 자살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것처럼 보이는 건 이들의 정신이 나약해져서가 아니다. 참아야 하는데 그걸 못 참는 아이들이 과거보다 비교적 표출을 많이 하는 거다.

-우리 사회가 뿌리깊은 군대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환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이= 근본적으로 인간을 도구로 쓰지 않으면 된다. 위계질서 자체를 부정하거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아버지이고 나이나 여러 서열에서 권위를 가진 대상이 된다. 문제는 군대식 문화가 위계질서 안에서 변태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국무회의 할 때 보면 대통령이 이야기하고 관료들이 받아적는다. 일방적인 소통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안 한다. 군대식 문화다. 그럴 것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권= 기업이 사람 뽑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스티브 잡스 같은 인간을 강조한다면 그런 식으로 인재를 뽑고 관리해야 한다. 학교문화는 바꾸기 힘들지만 기업이 바뀌면 젊은이 문화가 상당 부분 변할 수 있다.

또한 징병제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를 오래 하는 나라는 없다. 단 9개월이라도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고 적성에 맞게 훈련시키면 군대 질이 오히려 높아진다. 하지만 현재의 군대 훈련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일방적인 가학 피학만 반복하면서 익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군대의 개선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한다.

▦윤= 극심한 고용 불안정과 지나친 경쟁에 매몰돼 있어서긴 하지만 무비판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개인의 반성도 필요하다. 결국 군대문화 만연도 그런 맥락에서 풀어야 한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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