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에 내려가면 좋겠지만 지금 마무리짓지 못하면 나중에 같은 싸움을 다시 해야 하니까, 조급하게 마음먹지 않고 끝까지 할 겁니다. 이 여름 무더위도 견뎠는데…."
늦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던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종탑 위에서 오수영(39)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지부장 직무대행은 이같이 결의를 밝혔다. 오씨는 조합원 여민희(40)씨와 함께 지난 2월 6일 해고자 12명의 전원 복직과 단체협상 원상 회복을 요구하며 15m 높이의 종탑에 올라 고공 농성 중이다.
24일은 이들이 땅에서 발을 뗀 지 200일, 그 사이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오씨는 종탑에 처음 오르던 날을 떠올리며 "영화 17도의 매서운 날씨에 바람까지 심해 힘들었다. 저기 보이는 북한산, 인왕산, 남산이나 하늘색이 바뀌는 걸 보면서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이렇게 오래 고공 농성이 지속될 지 몰랐지만 노조의 요구안이 관철되기까지 내려 올 생각은 없단다. 여씨는 매주 들러 건강검진을 해 주는 한의사에게 "신장에 염증이 생긴 것 같으니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투쟁 중 암으로 숨진 고 이지현씨의 복직을 자신의 힘으로 이뤄주고 싶어 내려오지 않겠다고 했다.
2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 이들에겐 되레 두렵다. 여씨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 사는 것, 일상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서글프고 속상하다"며 토로했다. 오씨는 자신이 종탑에 오른 후 아들(9)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등 감정 조절에 애를 먹었다는 얘기를 전하며 울음을 삼켰다. 그는 "마음이 아프지만 이기고 내려가서 더 좋은 엄마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과 재능교육노조는 20일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난간 없는 종탑에서 200일째 투쟁하는 두 여성 조합원이 하루라도 빨리 종탑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단체협약 회복을 위한 사회적 연대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오씨는 "우리가 단순히 복직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데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불편하다"며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 등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니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거리 농성을 시작한 재능교육노조의 투쟁은 20일로 2,070일째를 맞았다. 지난해 5월부터 20여 차례 노사 교섭이 이뤄졌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재능교육 사태는 2007년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 당시 사측이 "학습지 교사는 특수고용 노동자라 노조를 결성할 수 없다"며 단체협약을 파기하면서 시작됐다. 노조 측은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이 "재능교육 학습 교사들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서 성격이 인정된다"고 판결한 것을 근거로 노조 인정 투쟁 중 해고된 12명 전원의 복직(1명은 암으로 사망)과 단체협약의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사망자를 제외한 11명의 복직을 수용하되, 단체협약은 노조 측이 현장에 복귀한 뒤 협상을 진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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