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를 배출하는 최선의 방책은 학생들이 역사 교과서의 독단적 가르침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미국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비판한 책 (휴머니스트 발행)에서 저자인 역사 교사 제임스 W. 로웬이 한 말이다. 2년 전인 2011년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을 놓고 논란이 일었을 때, 이 칼럼에서 인용한 구절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사를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기술해야 한다는 당시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주장은 냉전의 틀에 갇혀 우파적 가치관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샀지만, '자유민주적 질서'라는 표현으로 바뀌어 교과서에 반영됐다.
지난 일을 떠올린 것은 최근 또다시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육 논쟁 때문이다. 이번에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를 대입 수학능력시험의 필수과목으로 하느냐 마느냐로 시끄럽다. 불씨를 제공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한 언론사의 설문조사에서 6ㆍ25전쟁을 북침이라고 답한 고등학생이 70%나 되더라는 기사를 본 대통령이 '충격을 받았다'며 역사 교육을 강화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자 바로 수능 필수과목론이 나왔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시험 과목으로 만드는 게 정답이냐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찬성하는 이들은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는 잘 알지만 그래도 이 방법밖에 없다고 현실론을 펴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는 역사 인식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는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시험 필수과목으로 하든 선택과목으로 하든, 중요한 것은 역사를 왜 배우느냐일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는 그 다음 일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순서가 뒤집힌 것 같다. 왜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느냐는 근본적 질문은 밀어둔 채 방법에 매달리고 있는 인상이 짙다. 수능 필수과목론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격론이 있는데도 정치권이 서둘러 일을 추진하는 저의를 의심하기도 한다. 역사 교육 강화를 구실로 국가주의, 애국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역사를 편협하게 보게 만드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지난 10여년 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 논쟁이 있었고, 정부가 교과서 수정에 개입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럴 만도 하다.
우리 역사를 배워서 나라를 사랑하게 하는 게 뭐냐 나쁘냐는 의견도 있겠지만, 역사 교육은 애국 교육이 아니다. 내 나라의 부끄러운 역사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반성할 수 있게 하는 것, 모두가 '이게 정답이다' 외쳐도 '역사의 거울에 비춰 보니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역사 교육이 되어야 한다. 맹목적 애국심이 어떻게 역사 인식을 왜곡하고 미래까지 압류하는지는 지금 일본에서 극우파들이 저지르는 망동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딱 어울리는 명언을 하나 소개하겠다.
"애국심은 악당들의 마지막 피난처다."
19세기 영국의 뛰어난 사전 편찬자이자 당대의 논객이었던 새뮤얼 존슨이 한 이 말은, 가짜 애국자를 겨냥한 것이다. 당리당략과 자기 이익을 애국심으로 포장해 대중을 선동하는 자들을 비판한 말이다. 가짜 애국자일수록 역사를 들먹이고 입맛대로 끌어들여 대중을 선동한다. 그들은 역사를 독점하려 한다. 애국의 이름으로 오류와 죄악을 은폐하고 반대자를 억압하며 비판을 차단한다. 그런 불순함에 저항하는 눈과 힘은 역사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성찰과 훈련에서 나온다. 앞서 인용한, 역사 교과서를 의심하게 하라는 로웬의 말 또한 애국주의로 포장해 일그러진 역사 인식을 경계하고 있다.
악당들이 강조하는 애국심, 그게 꼭 일본 극우만의 일일까. 비판과 성찰에 소홀한 채 배우는 역사는 언제 어느 나라에서든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의 일이 아니라고 본다.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가, 역사 교과서 논쟁은 여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오미환 문화부장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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