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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개발 신화 매몰된 세상 불안·위기감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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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개발 신화 매몰된 세상 불안·위기감 나누고 싶었다"

입력
2013.08.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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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생태주의자는 성가신 존재들이다. 댐 건설을 반대하고 원전 건설을 비난하고 나무 한 그루, 풀 뿌리 하나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그들은, 적당히 무감한 보통 사람들의 눈엔 별 것도 아닌 일에 유난을 떠는 잔소리꾼일 뿐이다.

짜증은 그들의 주장을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할 때 더욱 치솟는다. 녹조로 시퍼렇게 물들은 금강을 바라볼 때, 후쿠시마 원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염수를 막을 수 없다는 도쿄전력의 무력한 고백을 들을 때, 우리는 이미 멋대로 헤집어 놓은 자연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돌려놓아야 할지 몰라 그저 막연하게 짜증만 낸다.

사람들이 짜증을 내건 말건 20년 넘게 한 목소리를 내온 최성각 작가가 소설집을 냈다. 는 작가가 이제까지 쓴 생태소설을 한데 엮은 책이다. 문예지에만 발표하고 출간하지 않은 단편들과 예전에 펴냈지만 절판된 중편, 엽편 소설까지 하나로 묶어 두툼하다. 1989년 생태소설 를 발표한 이후 상계소각장 건설 반대, 동강댐 건설 반대, 새만금 방조제 반대 등 각종 환경 운동에 투신한 그를 두고 김욱동 문학평론가는 "한국 문단에서 보기 드물게 '짙은' 녹색 문학을 추구해온 작가"라고 평했다. 환경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한번씩 이를 소재로 삼은 작가는 많지만, 그처럼 문학을 오히려 도구로 활용해 치열하게 생태주의를 부르짖은 이는 드물기 때문이다.

춘천시 서면 서상리 툇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작가는 "위기감을 나누고 싶었다"는 말로 출간의 변을 대신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사실상 전 인류가 피해 대상이 된 지금에도 성장 신화는 영원할 거라 믿는 사람들에게 불안과 위기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9년째 이어온 시골 생활도 그에 따르면 저항의 한 방편이다. 밭농사를 짓고 장작을 패고 닭을 치며 사는 그는 끝없는 풍요와 성공을 좇는 세상을 향해 '여기 또 다른 삶이 있다'고 외친다. "지금 행복한 삶의 모델이라고 하면 한 가지뿐입니다. 더 많은 소득, 그에 따른 더 많은 소비, 그를 위한 더 큰 성공. 이것 외에는 실패하고 불행한 삶으로 여겨지죠. 손에 닭 똥을 묻히고 족제비 막을 궁리를 하는 삶도 행복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겁니다."

급진적이고 단호한 그의 삶과 달리 소설은 환경 오염의 무시무시함을 경고하는 '지옥도'와는 다르게 펼쳐진다. 수록된 단편 중 '바퀴 저쪽에'에서는 잠실대교 끄트머리에서 인도가 끊겨버려 어쩔 줄 몰라하는 노파와 그런 노파를 보고 차를 돌려 태우러 갈까 망설이다가 끝내 가지 못하는 청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보자기처럼 허옇게 펄럭이며……추위에 떠는 작은 들짐승을 떠올리게 하는" 노파를 구하려다가 뒤차의 클랙슨 소리에 떠밀려 앞으로 전진하는 주인공은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자연을 포함해 발언권이 없는 모든 약자의 사정을 돌아보는 것,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는 생태계 위기의 유일한 해법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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