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를 배우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거장 파블로 카잘스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었다. 실망스럽게도 연주는 개판이었다. 자신이 듣기에도 그랬다. 더 실망스러운 건 거장의 반응이었다. 거장은 멋진 연주라며 칭찬을 했던 것이다. 젊은이는 그가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거라 판단했다. 시간이 흘러 젊은이는 프로연주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카잘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솔직히 말했다. 오래 전 당신에게 실망했었다고. 그 말을 듣자 거장은 버럭 화를 내며 바로 첼로를 켰다. '개판'이었던 그 몇 소절이었다. "다 엉망이었지만 당신의 핑거링만은 끝내줬어. 눈에 불을 켜고 실수나 찾아대는 건 머저리들이나 하라 그래! 하나의 아름다움만 찾을 수 있으면 어떤 연주라도 멋진 거야!" 영화 '마지막 4중주'에서 파킨슨병에 걸린 늙은 첼리스트가 학생들에게 들려준 경험담이다. 카잘스의 일갈이 가슴을 치고 간다. 사람을 만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완전무결한 경우는 없다. 어떤 작품에도 어떤 사람에게도 흠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흠이 아니라, 흠을 낱낱이 들추는 동안 나 자신이 흠에 사로잡힌 '머저리'가 된다는 것이다. 어디에나 흠이 있듯 어떤 흠도 희미한 빛을 품고 있다. 그 빛을 발견하는 순간, 빛은 대상에 귀속되는 데 머물지 않고 찾은 사람에게도 와 닿는다. 파블로 카잘스가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빛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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